[미술산책] 자기 고백의 예술 기사의 사진
트레이시 에민 ‘Because of You Im Here’ Tracey Emin Studio
한 줄, 길어야 두 줄이다. 참 쉽고 간단하다. 부드럽게 써내려간 필기체 글씨가 촉촉한 정감을 전해주는 트레이시 에민(54)의 네온작업은 더없이 간단명료하다. 번역을 하자면 “당신 때문에 내가 여기 있다”쯤 되겠다. 사랑하는 이에게 나직이 건네는 고백이다.

‘왕년에 나도 손글씨 좀 썼는데…’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슬쩍 도전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편안한 작업이 나오기까지 작가의 반평생, 엎치락뒤치락 파란만장했다. 터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에민은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사회공헌도 많이 하지만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 일곱 살 때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열세 살 때 성폭행을 당하면서 거리로 뛰쳐나갔다. 자기파괴적인 불량소녀를 수렁에서 건진 것은 친구였다. 특별한 재능을 간파한 친구의 도움으로 미술학교에 다닌 에민은 절망으로 얼룩졌던 삶을 작품에 드러내며 스스로를 치유해갔다. 자신의 너저분한 침대를 미술관에 통째로 옮겨오는 등 신랄한 고백적 설치미술로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후 퍼포먼스, 사진, 영상, 아플리케, 회화, 네온으로 작업 지평을 넓힌 에민은 “내게 미술은 멋진 것을 만든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고 일갈했다. 내밀한 개인사를 끌어들이는 작업을 하나의 예술장르로 자리잡게 한 그는 ‘데뷔 25년’을 기점으로 성찰적인 작업으로 선회 중이다. 아팠던 만큼 예술 앞에 더욱 성숙해진 것임에 틀림없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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