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4>] 인간이 갈망하는 절대성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4>] 인간이 갈망하는 절대성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기사의 사진
요하네스 케플러의 고향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 바일데어슈타트(Weil der Stadt) 마을 중앙에 케플러의 동상이 서 있다. 박양규 목사 제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제24문: 신앙고백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답: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째, 성부 하나님과 창조, 성자 하나님과 구원, 성령 하나님과 거룩(성화)입니다.

제28문: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주관하신다면, 지금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미래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는가’를 명료하게 체계화한 것이 사도신경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23문에서 사도신경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제24∼28문에서는 성부 하나님과 우리의 창조에 대해 설명한다.

과학자들의 고백

사도신경에 등장하는 성부, 성자, 성령은 다른 인격체이지만 하나로 연합하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이다.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종교와 과학의 영역은 다르다. 과학 이론이 믿음을 대체할 수 없고, 믿음을 과학적으로 모두 규명할 수 없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를 굴복시키는 관계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 세워나갈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로부터 오늘날까지, 인류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을 탐구해왔다.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은 불변하는 한 가지를 ‘빛’으로 규정했고, 그것은 과학적으로 정설이 되었다. 빛은 시간, 속도,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 기준이 됐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빛이라고 했고(요일 1:5), 접근할 수 없는 빛 속에 존재한다고 했다(딤전 6:16). 하나님을 빛으로 표현한 것이 과학적 탐구를 통해 얻어진 것은 아니지만 종교와 과학의 접점이 있다면 공감을 나눠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종교에 던지는 대화는 우주에 불변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 대화가 없었다. 종교는 자신에게 위협적인 요소들을 ‘이단’으로 낙인 찍어 배척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우주의 불변하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이단이라는 정죄와 배척이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이단 가설’을 ‘정설’로 밝힌 인물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다. 당시 신교와 구교 간 싸움이 격렬하던 시절, 개신교도였던 케플러는 가톨릭으로부터 개종 요구를 받았다. 독일을 떠나 체코 프라하로 가서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1546∼1601)의 제자가 된다. 브라헤의 천체관측 자료는 케플러로 하여금 ‘불변의 진실’을 발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 자료를 토대로 그 유명한 ‘케플러의 법칙’이 만들어졌다. 중세 교회는 지구가 중심이어야 하고, 모든 천체는 완벽한 원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은 지구를 변두리로 몰아내는 이론이므로 ‘인정해서는 안 되는’ 주장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케플러는 천체관측 자료를 창조주의 속삭임으로 간주했다. 어떤 결과가 도출되든지, 그 결과에 자신의 생각을 굴복시키겠다는 ‘소명자적 자세’로 연구에 임했다. 그 결과 케플러의 법칙이 탄생했고, 이단자들에게 정당성을 제공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를 비롯해 뉴턴과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발견한 것은 이 세상에 불변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뉴턴은 천체의 정교한 법칙을 ‘우연’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고백했고, 케플러는 모든 우주의 법칙과 질서를 볼 때, 반드시 ‘설계자’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것을 종교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다. 이렇게 과학과 종교의 대화가 성립이 된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인가?

케플러가 활동하던 당시에 과학은 철학(哲學)의 영역에 속했다. 천동설을 주장하며,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했던 가톨릭 교회는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규정했다. 이단으로 낙인 찍힌 성직자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세상을 떠난 이후 1835년이 돼서야 가톨릭 교회는 그의 저서들을 금서(禁書)에서 해제했다. 1633년 이단으로 정죄했던 갈릴레이에 대해 로마 가톨릭은 1992년 10월 비로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이렇듯 16∼17세기에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종교재판소에 회부될 각오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진실’을 발견했지만 머뭇거리던 갈릴레이는 케플러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도 당신(케플러)처럼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고 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선생님의 사례를 보면서 출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케플러 선생님 같은 분들이 더 많아지면 출판을 하려고 합니다.”

이에 케플러는 바로 답장했다. “잠시 우리의 주장을 철회하자는 선생님 말씀에 대해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연구가 ‘정설’로 인정될 때 우리의 연구를 출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현명하게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진실의 목소리를 낼 때, 지금 부당하게 재판 받는 동료들이 용기를 내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힘을 합쳐 이 어려움에 맞서야 합니다. 진실의 힘은 위대합니다.”

‘시녀’의 위치에서 케플러와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입증했고, 350년 후 교회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냈다. 케플러는 원래 신학자가 되기 위해 튀빙겐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천문학자가 되었다.

후에 케플러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신학자가 되려고 했지만 천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시 19:1)하는 것을 보면서 천문학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업소명설에 기초한 신앙고백이다. 중세 교회의 오만함은 성속(聖俗)의 구분을 통해 자신들을 구별하려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그 구분을 없앴고, 누구든지 ‘성직자(聖職者)’임을 천명했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학문이다. 그래서 종교와 과학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고백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조물주가 설계한 불변의 법칙과 질서가 있다. 이것은 우리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다. 신이 우주를 설계해서 창조했다면, 불변의 법칙으로 세상을 유지한다면, 미래의 영역도 설계자의 계획 속에 포함된다는 고백이 가능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攝理)이다. 우리 개인의 인생이 우주에 포함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불변의 법칙과 섭리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눔과 적용을 위해 생각해 볼 것은

☞ 우주와 세계 속에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와 계획이 반영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개인에게 어떤 위로와 확신을 주나요?

☞ 요하네스 케플러는 천문학자라는 직업을 통해 '성직'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저마다 '성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글=박양규 목사약력=△서울 삼일교회 교육디렉터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저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