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이 모여 기도가 되듯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됩니다 기쁨 가득한 추석 되세요”

구순에 배운 카톡으로 전하는 이영복 할머니의 추석 인사

“두 손이 모여 기도가 되듯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됩니다 기쁨 가득한 추석 되세요” 기사의 사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영복 할머니가 카카오톡에 메시지를 입력하며 활짝 웃고 있다. 서천=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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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0세인 이영복 할머니는 요즘 카톡(카카오톡)과 사랑에 빠졌다. 오죽하면 “우리 애들이 내가 뭐에 중독됐다고 걱정한다”고까지 말했을까. 그런데 할머니의 ‘남 다른’ 카톡 사랑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25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파란 대문집’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2014년 8월에 이은 두 번째 만남이다.

할머니의 ‘카톡 사랑’

78세에 처음 한글공부를 시작해 81세에 초등학교 인정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2014년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할머니는 ‘공부와 사랑에 빠진 할매’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당시 인터뷰에서도 “공부하는 게 최고로 재미있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 할머니가 지난해 추석 때 막내아들로부터 아이패드를 선물 받고 1년여 동안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연습을 했다. 이제 할머니의 카톡 친구는 15명. 된소리를 입력하거나 띄어쓰기를 하는 게 조금 서툴긴 해도 할머니가 카톡을 열심히 배운 데는 이유가 있다. 생애 아흔 번째 추석을 맞이하며 친구들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다. 이미 초안도 작성해 놨다.

‘꽃잎이 모여 꽃이 되고, 나무가 모여 숲이 되며, 미소가 모여 웃음이 됩니다. 기쁨이 모여 행복이 되고, 두 손이 모여 기도가 되며,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되듯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됩니다. 기쁨이 가득하고 즐겁고 행복한 날 보내세요. 내게 좋은 인연이 되어 준 벗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환한 불빛처럼 항상 밝고 따스하게 내게 용기와 희망, 행복을 기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2017년 할머니의 추석은 설렘이다.

인생의 버팀목, 말씀과 기도

할머니는 매일 새벽 5시 말씀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901년 설립된 서천교회 원로권사인 할머니는 여섯 살 때 언니를 따라 교회에 처음 나갔다. 17세에 시집 온 이후론 오랜 세월 교회에 다니지 못했다. 남편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영복이 네가 교회를 다녀야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지”라는 친정어머니의 유언에 할머니는 62세부터 다시 교회에 나갔다. 80세 넘어서까지 교회에서 식사 당번을 했을 정도로 그는 ‘열혈 권사’였다.

할머니에게 신앙은 삶의 버팀목이다. “나이 묵을수록 교회는 꼭 댕겨야 혀유. 살아보니 믿음이 있어야 마음이 좋아져유. 의지할 데가 거그밖에 없슈. 나이 먹으면 속이 좁아져유. 마음 문이 좁아지니 아니꼽고 서글픈 것도 많어유. 그럴 때 믿음이 있어야 견딜 수 있어유. 정 견디기 힘들면 기도허고 찬송을 불러유. 마음을 펼 수 있도록 신앙을 꼭 가져야 혀유.”

할머니는 찬송가 첫 장에 ‘복의 근원 강림하사’(28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93장) 등 위로가 되는 찬송 8개를 적어놓고 늘 부른다. 가끔씩 아니꼽고 서글픈 생각이 밀려오면 고린도후서 말씀을 읽는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부지런하게 살아온 ‘90 평생’

가난한 양복 기술자에게 시집 온 할머니는 하도 일을 많이 해 젊은 시절 손톱을 깎아본 적이 없다. 깎기도 전에 다 닳았기 때문이다. 병든 것도 몰랐던 할머니는 치료 시기를 놓쳐 오른쪽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열심히 달려온 할머니는 그 덕에 8만5951㎡(약 2만6000평)에 이르는 땅에서 농사를 지었다.

“내게 젤로 흐뭇한 추석은 마흔 살, 오십 살 때유. 우리 식구만 다 모여도 15명이유. 장사하는 이웃들, 농사짓는 인부들까정 다 챙겨 음식을 나눴어유. 특히 송편을 한 접시씩 찌고 또 쪄내유. 종일 송편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주고나면 하루가 곰방이유. 서로 어울려 살던 그때가 참말로 좋았구나 싶어유.”

젊었을 때부터 이웃과 함께해 온 할머니는 2010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땅을 팔아 서천군에 기부했다. 자녀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인근 시초초등학교 도서관 설립을 지원했고, 서천고등학교엔 장학금도 전달했다. “남편도 그렇고 내 맴도 서천에서 돈 벌었으니 여기에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혀유. 돈은 옳게만 쓰믄 천하의 보배지만 그렇지 못하믄 그보다 더한 원수도 없슈. 보배같이 돈을 써야 혀유.”

할머니는 토요일 하루를 빼고 오전 9시면 집을 나선다. 월·화·금요일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종합교육센터에서 한글을 배운다. 수요일엔 서천교회 노인대학을, 목요일엔 보건소 정신교육센터를 다닌다. 최고 연장자이지만 할머니는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오디다 내 이름을 냈으면 최선을 다해 우등은 못 허더라도 개근은 혀야쥬.”

할머니의 구십 평생은 근면, 성실함으로 점철된다. 그런 자세로 한글을 배워 시를 쓰고 글을 썼다. ‘할매의 봄날’이란 수필집도 냈다. 평생 성경 한 번 못 읽을 줄 알았는데 성경통독도 했다. 카톡까지 배운 할머니는 내년엔 중학반에 올라가 영어에도 도전한다.

“내가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진 뭐든 다 해볼라구유.” 2018년 추석 땐 영어와 사랑에 빠진 할머니를 만날 것 같다.

서천=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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