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정치적 세무조사 기사의 사진
1983년 7월 31일자 석간과 8월 1일자 조간 주요 신문 1면 아래에는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 명의의 깜짝 놀랄 만한 의견광고가 실렸다. ‘강호제현께 알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광고는 “황당무계한 유언비어가 일부 몰지각한 자들에 의해 날조되고 있다. 한 기업의 의욕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가”라며 분노로 가득 찼다. 자신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대놓고 성토한 격문이었다. 세무조사에 대해 기업이 공개적으로 반발한 초유의 사례인데다 김 회장이 직접 작성한 문안의 수위가 예사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장은 걷잡을 수 없었다. 5공 정권 실세 안무혁 국세청장은 격분했고 조사는 한층 세졌다. 결국 김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됐고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신흥 재벌 명성은 해체됐다. 시간이 흘러 이 사안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세무조사였다는 해석이 잇따라 제기됐다. 김 회장이 정권에 찍혔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정치적 세무조사 흑역사는 하나둘이 아니다. 전두환정권 때 국제그룹이 세무조사 직격탄을 맞고 사라져버렸고, 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대선 출마를 노린 정주영 명예회장을 겨냥한 현대그룹 세무조사가 단행됐다. 김영삼정부는 대선 지원을 거부한 박태준의 포스코를, 박근혜정부는 직전 정부의 특혜 기업을 혼냈다. 정치적 세무조사 가운데 최악은 한상률 국세청장이 주도한 태광실업 조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 조사는 정치적 목적이 단박에 간파될 만큼 노골적이었다. 안원구 전 서울국세청 국장은 저서 ‘잃어버린 퍼즐’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국세청이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 지난정권 때의 정치성 세무조사 10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조사의 성과 여부는 ‘양심선언’과 ‘자기반성’에 달려 있다. 과거 의혹이 있는 세무조사에 간여했던 공직자의 용기 있는 고백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밀주의가 만연된 국세청 조직 특성상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정치적 세무조사였음이 판명되면 성찰적 후속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응분의 처벌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이 작업이 의미를 갖게 되고 정치 세무조사의 재발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된다.

정진영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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