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세환] 집 구하기 전쟁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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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빨리 큰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 이야기다. 각자 인생 목표를 발표하는데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아이들이 유독 많다고 했다. 100평짜리 넓은 집 혹은 해변가 으리으리한 별장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모 건설사의 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구체적으로 지목하는 대목에선 좀 으스스하다.

대통령과 우주인에서 출발해 판사 검사 의사를 거쳐 공무원까지 뻗어온 학창시절의 꿈이 직업의 차원을 뛰어넘어 부동산이라는 더욱 진한 현실과의 타협을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도심과 더 가깝고, 각종 개발 호재가 즐비하며, 한강 조망이 가능한 아파트를 따지는 건 어른의 영역이야. 국가와 사회를 위해 너희는 더 높고 숭고한 꿈을 꾸렴 식의 지루한 훈계를 할 수가 없다. 돌맞이 선물로 청약통장을 만들어주고, 학군도 아파트별로 묶이는 부동산 공화국에선 내 몸 하나 누일 보금자리 마련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들에게 곧 닥칠 미래이기도 하다.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흙수저 대학생에겐 집의 존재가 더 절박하다. 전세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살인적인 대학가 방값은 그들을 옥탑방과 반지하로 내몬다. 서울에 집을 가진 부모를 뒀다면 시간과 비용을 아껴 공부를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과 출산은 막연히 체감했던 부동산의 무게를 온 몸으로 짊어지는 출발선이다. 젊음과 맞바꾼 대출 잔고가 끝을 보일 무렵, 장성한 자녀가 웃으며 결혼을 선언한다. 또 다시 책임 또는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값 조달전이 재개된다. 아아, 대를 이어 전수되는 이 지긋지긋한 집 구하기 전쟁!

최근 전 세계 150개 도시 가운데 서울 집값 상승률이 고작 91위에 그쳤다는 한 글로벌 컨설팅 업체의 발표는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선 공허한 숫자에 불과하다. 욕심 버리고 형편에 맞춘 집을 구하라고? 전세 살다 내 집으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가는 재미가 있지 않느냐고? 일견 맞는 말이다. 다만 이렇게 집 하나 구하기 힘든 사회가 과연 정상인지, 규제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왜 하늘 높이 치솟는지 고민해볼 필요는 분명 있다.

분노에 기댄 탐색은 매우 쉽다. 피아를 식별해 맹공을 퍼부으면 된다. 부동산 취재를 맡은 지 1년이 채 안 된 초짜 기자의 눈에는 건설사의 야욕이 첫째였다. 저유가 탓에 죽 쑨 해외 수주를 국내 사업으로 만회하려 하는구나. 3.3㎡당 분양가가 4000만원을 넘긴 단지가 나오면서 사회적 박탈감이 팽배한데도 돈 벌기에만 급급하구나 했다. 강북은 홀대하고, 얘기되는 강남 재건축 조합에만 온갖 혜택을 제공하며 프리미엄(호가) 상승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도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자 투기세력으로 불똥이 옮겨갔다. 경기도 성남의 두 살짜리 아기가 최연소 임대주택 소유자라는 현실을 개탄하며 갭 투자자와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부의 규제가 성공하길 내심 바랐다. 그러나 11·3과 6·19를 거쳐 8·2대책까지 나왔지만 집값은 잠시 주춤했다 또 오르고 있다. 저금리에 갈 곳 잃은 돈이 안전한 투자처인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는 원론과 주택의 절대 공급량이 부족하다는 가설에 더해 온갖 질책과 힐난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몰라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적어내려가는 이 시간에도 한국감정원과 부동산114는 매주 훌쩍 뛴 서울 집값 그래프를 메일로 보내온다. 복잡다단한 부동산 월드를 각기 해체해 무리하게 명료화시켜온 오래된 작업이 실패했단 증거다. 다주택자를 무조건 나쁜 놈으로 몰기엔 21억원짜리 전세에 살고 있는 유력 정치인을 착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굳이 눈에 힘을 주고 죄인을 찾을 일만은 아니다. 집값을 낮추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는 시간차를 두고 같은 사람이다. 집을 찾을 때는 좀 쌌으면 하고, 집을 구했다면 가격이 최대한 올랐으면 싶은 게 우리네 욕심이다.

최근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역시 ‘집값 떨어진다’는 논리가 있었다.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원은 이렇게 되물었다. “10여년간 재건축될 날만 기다리고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았는데 당신이라면 분양가를 싸게 책정하고 싶겠어요?” 집에 대한 욕망만 놓고 보면 월세 사는 나나 그들이나 모두가 똑같다. 선과 악을 나누려는 무리한 시도보다 사는 자와 파는 자의 본능을 어떻게 보다 효율적으로 조절할 것인가가 부동산 대책 기저에 자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박세환 산업부 기자,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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