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소녀 테아라 기사의 사진
림 테아라는 눈이 새카맣게 빛나는 열한 살 캄보디아 소녀입니다. 가무잡잡한 피부, 오동통한 볼을 가졌어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질끈 매고 활짝 웃을 때면 주위가 다 환해집니다. 버드렁니가 귀여움을 더해주죠.

테아라는 프놈펜에서 자동차로 2∼3시간 떨어진 깜뽕스프라는 곳에 삽니다. 외할머니 집에서 엄마와 오빠 이렇게 삽니다. 캄보디아에선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남자가 책임지기 싫어 도망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는데 테아라 집이 그 사례입니다.

지난 8월 말 프놈펜 헤브론선교병원에서 테아라를 다시 만났습니다. 테아라는 어린이 심장병 환자였습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빠짝 말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테아라와 그녀의 어머니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될 만큼이요. 저개발국 의 시골 어린이가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건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테아라 어머니는 딸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인 의료선교사가 운영하는 헤브론병원에 딸을 데려가 병원 마당에서 노숙하다시피 하며 치료받을 수 있기를 기다렸습니다. 헤브론병원은 2007년 서울 충무교회 김우정 장로가 설립했습니다. 캄보디아 국민들 사이에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인산인해였죠. 수백㎞ 떨어진 곳에서 환자들이 찾아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붐빕니다. 김 장로는 서울의 소아과 병원을 접고 의료선교사로 나선 분입니다. “캄보디아 의료선교만 다녀오면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어 ‘일단 가자’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테아라는 서울 인제대백병원까지 후송되어 수술받은 끝에 생명을 건졌습니다. 헤브론병원은 테아라 외에도 수백명의 심장병 환자를 살려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마치 1930년대 ‘닥터 홀의 조선회상’을 보는 것처럼 치유의 기적을 낳죠.

우리도 테아라와 같은 기적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1906년 무렵 부모 없이 버려진 동상 걸린 소녀 옥분이는 미국 의료선교사들에 의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옥분이는 두 손과 다리 한쪽을 잘라내고 목발을 짚은 채였지만 “두 손 없고 발도 하나만 있는 나 옥분이도 예수님이 사랑한다고 말했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미네르바 구타펠 선교사 병원일지 기록입니다.

이날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테아라는 명랑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의사가 되어 나같이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줄 거예요. 성경책에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했잖아요.” 테아라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테아라는 공부를 아주 잘합니다. 올 가을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죠. 한데 엄마는 아들 딸 모두의 학업을 중단시키려 했습니다. 가난한 싱글맘이기 때문이죠.

저는 그때 캄보디아 선교 현장 취재로 프놈펜에 왔다가 더위를 먹어 헤브론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지인들 단체 카톡방에 저의 소식을 전하면서 테아라의 얘기를 했더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지인 한 분이 테아라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가 의대에 들어간다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모두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테아라는 상급학교 진학이 확정됐습니다. 심지어 오빠도 말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고 그 후원자의 지인이 오빠의 후원자가 됐습니다. 현재 테아라의 어머니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프놈펜살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과거 한때 옥분이였고 테아라였습니다. 히브리인들과 같이 일본의 노예생활을 했고 전쟁과 가난을 겪었죠. 또 6·25전쟁 직후 서울 사대문 밖은 온통 판자촌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들의 사랑과 희생으로 허기를 면했고 복음을 접했습니다.

이제 오늘의 대한민국은 ‘복의 근원’을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웃과 세계를 향해 손을 활짝 뻗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제 최대 10일간의 황금연휴가 시작됐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라는 말씀 새기며 이웃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연휴 되기를 바랍니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종교국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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