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서윤경] 코리아세일페스타 기사의 사진
19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 신입생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 중에도 호암아트홀에서 열렸던 ‘팝아트전’은 충격이었다.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다. 캠벨 수프 깡통, 콜라병, 메릴린 먼로가 모양은 같지만 다른 색을 입고 나열된 걸 보고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배운 미술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누아르, 반 고흐가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그린 그림들이었다.

실크스크린으로 색만 바꿔 마구 찍어대는 작품을 예술품이라 볼 수 있을까 의심했다. 누가 진짜 먼로이고 무엇이 가짜 콜라병일까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의미 없다.”

복제는 인정하지 않고 진품만 찾으려던 이런 행동이 ‘시뮬라크르(simulacre)’란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프랑스어로 시늉, 흉내라는 뜻을 지니는 시뮬라크르는 가상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simulacrum)에서 유래했다. 단어 자체에서 볼 수 있듯 시뮬라크르에는 부정적 편견이 담겨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왜 시뮬라크르가 위험스러운 것으로 취급받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신은 그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들었으나, 인간은 죄 때문에 신과의 그 유사성을 잃어버리고 타락했다. 우리는 시뮬라크르가 되었고 감성적 실존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도덕적 실존을 상실했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깬 것이 바로 콜라병과 먼로를 재해석한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원본보다 진화한 복제를 새로운 원본으로 보는 시대가 됐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난 28일부터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시작됐다. 정부는 내수 활성화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자동차부터 문화까지 다양한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또한 복제품이다. 정부도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나 영국의 박싱데이를 차용했다고 대놓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 복제품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지난 30일 코리아세일페스타 취재를 위해 찾은 명동에선 지난해와 달리 행사를 홍보하는 현수막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매장 직원 중엔 코리아세일페스타를 모르는 경우마저 있었다. 시장도 다를 바 없었다.

아직 한 달의 시간이 남은 코리아세일페스타가 과연 긍정의 시뮬라크르가 될 수 있을까. 해답은 앤디 워홀이 제시했다. “좋은 비즈니스가 가장 훌륭한 예술이다.”

글=서윤경 차장,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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