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전쟁, 현장을 가다] 365일 24시간 상담… “얘기 들어만 줘도 위로된대요” 기사의 사진
경기도 성남 치매상담콜센터 상담사들이 최근 치매 환자 가족들에게서 걸려온 상담전화를 받고 있다. 치매상담콜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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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인 김강분(가명·여)씨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집에서 쫓겨 나와 찜질방에서 쪽잠을 잔다. 김씨의 남편은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다. 최근 기억부터 사라지기 때문에 남편은 젊은 시절의 아내 얼굴만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아내를 못 알아보고 “너는 누구냐. 내 아내는 따로 있다”며 화를 내면 어쩔 수 없이 찜질방으로 향하곤 했다. 막막했던 김씨는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영명 상담사였다. 그는 “남편이 못 알아볼 때는 젊은 시절에 입던 꽃무늬 치마를 입거나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라”고 조언했다. 김씨는 이후 석 달째 이 상담사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상담사는 김씨의 남편과 직접 통화를 해 진정시켜주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치매센터가 운영하는 경기도 성남 치매상담콜센터에는 이 상담사와 같은 직원이 36명 근무하고 있다. 주·야간으로 조를 짜 365일 24시간 상담을 한다. 이번 추석 연휴도 예외가 아니었다. 치매상담콜센터는 2013년 12월 1일 개통한 후 지난 8월 말까지 21만265건을 상담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한 후 상담 건수는 크게 늘었다. 올해는 8월까지 5만6364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특히 구체적인 지원 제도, 혜택 받는 방법을 묻는 전화가 많이 늘었다.

치매상담은 조기발견 예방 원인 증상 치료법 지원제도 등의 ‘정보제공’과 감정적 어려움을 들어주는 ‘상담’으로 나뉜다. 지역의 치매지원센터나 보건소와 환자 가족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상담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담사가 정기적으로 전화를 해 관리한다. 짧게는 일주일에 한 번, 보통 2∼3개월에 한 번은 안부를 묻는다.

치매 시작부터 함께하는 상담

80대인 한기병(가명)씨는 최근 기억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실패했다. 정영주 상담사가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원래 앓고 있는 병을 치료받으러 가자거나 집안 어르신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 여러 방법을 제안했다. 정 상담사는 8일 “치매는 본인이 자각하기 어려운 질병이어서 진단받는 것부터 어렵다”면서 “치매가 의심되지만 환자가 병원행을 거부하는 이 지점부터 상담사들이 돕는다”고 말했다.

치매 판정을 받고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해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하루에 한 번 먹어야 하는 치매 약을 혼자 챙겨먹던 환자가 약을 먹은 사실을 잊고 거푸 약을 먹어 응급실에 실려 간 경우도 있다. 김희정 상담사는 “가족이 옆에서 얼마나 도와주느냐에 따라 치매 진행이 더뎌질 수도 있고 불과 1년 만에 한없이 나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상담사는 “50대 후반에 치매 진단을 받은 74세 남성이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아 처음 진단 때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경우도 있다”며 “치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해 꾸준히 관리하면 증상 진행을 10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상담사들은 치매 환자를 돕는 데 첫 번째로 필요한 건 ‘역지사지’라고 말한다. 김 상담사는 “치매 환자는 모든 시공간이 뒤섞이기 시작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한다”며 “환자에겐 매우 절박한데도 못하게 해서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치매환자가 무조건 떼를 쓴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 상담사는 “환자의 욕구를 막으면 이차적으로 폭력성이 나온다”며 “가능한 요구라면 들어주는 게 좋다”고 했다.

“어머니를 때렸습니다”

40대인 정상호(가명)씨는 어머니가 치매판정을 받았다. 낮에는 방문요양보호사에게 어머니를 맡겼는데 어느 날 요양보호사가 없는 틈에 어머니가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오랜 병구완에 지쳐 있던 정씨는 분노가 폭발해 어머니의 뺨을 때렸다. 정 상담사가 전화를 받았을 때 정씨는 “어머니 얼굴을 때려 멍이 들게 했다”며 괴로워했다. 정 상담사는 정씨에게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안내했다.

치매는 환자보다 가족이 더 힘든 병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치매 어머니 돌보느라 힘들어서 지금 어머니 손잡고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뛰어내릴 거다’고 하거나 ‘같이 죽으려고 흉기를 사 왔다’는 전화도 걸려왔다.

이 경우 위치를 파악해 경찰에 연계하고 자살예방센터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중요한 건 가족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위로다. 이 상담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대안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며 “본인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바쁜 가족, 아픈 환자

50대인 임정희(가명·여)씨는 밤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번다. 원래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업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후 낮 동안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 일을 관뒀다. 상담사들은 임씨처럼 치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생업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사례들을 자주 접한다.

은보경 상담사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60대 김성남(가명)씨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지방에 사는 김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일주일에 두세 차례 서울까지 물건을 납품하는 일을 했다. 집에 아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데다 치매 증상도 심하지 않다고 생각해 아내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아내는 화장실을 가야 한다며 1분 간격으로 차를 세워댔다. 일을 제대로 못할 정도였던 김씨는 콜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은 상담사는 “일을 나가기 전 훈련을 하라”고 조언했다. 두 시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 놓고, 벨이 울리면 화장실에 가는 것으로 인지토록 훈련하는 것이다.

50대 주부 안영희(가명)씨는 남편이 치매 판정을 받자 직장을 그만두고 요양보호사가 됐다. 그는 2년 전 콜센터에 전화해 “치매 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 관련 정보를 얻었다. 현재는 남편이 낮에 머무는 주간보호센터에 함께 다니고 있다.

1년 간병비 1000만원

상담사들은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간병비 지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치매국가책임제로 치료과정에서 본인부담금은 줄어들겠지만 간병비는 또 다른 짐이다.

자식도 못 알아볼 정도로 치매 증상이 심한 90대 신영자(가명·여)씨는 혼자서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심장도 좋지 않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다. 한 달 간병비만 70만원씩 든다. 은 상담사는 “1년이면 간병비로 1000만원이 드는 셈”이라며 “치매는 기약도 없이 비용이 드는 질병인 데다 부모가 모두 치매에 걸리면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전했다.

교통수단 지원도 필요하다. 은 상담사는 “치매에 걸린 남편보다 덩치가 작은 아내가 환자의 돌발행동을 통제하면서 무사히 병원까지 가는 건 쉽지 않다”며 “장애인이동약자지원센터처럼 교통수단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담사들은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이후 치매 환자·가족들의 기대가 커진 점을 수화기 너머로 느낀다고 했다. 은 상담사는 “치매 가족에게 ‘이런 센터를 국가에서 운영해줘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감동한 적이 있다”며 “치매 지원 인프라가 더 확충돼 환자나 가족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남=최예슬 기자smarty@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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