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고치고, 가르치고… 부산 ‘복음의 첫 씨앗’된 호주 선교사들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회 한국 선교 공식 보고서’에 나타난 헌신

병 고치고, 가르치고… 부산 ‘복음의 첫 씨앗’된 호주 선교사들 기사의 사진
왼쪽 위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경학자였던 찰스 매클라렌 선교사(오른쪽)가 의과대학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 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한 헬렌 매킨지 선교사가 막 출산한 여성을 위로하고 있다. 매클라렌 선교사의 신경학 강의실 전경. 심방을 가고 있는 조안 잉글랜드 선교사(오른쪽)와 길정선 전도사. 영등포산업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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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10월 2일, 호주 출신 헨리 데이비스는 최초의 호주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았다. 한양에서 언어훈련을 마친 그는 이듬해 3월, 선교 목적지였던 부산을 향해 선교여행을 떠났다. 스무날 동안 500㎞를 걸어 4월 4일 부산에 도착했지만, 그에게 부산은 선교지가 아니라 순교지가 되고 말았다.

천연두와 급성폐렴은 데이비스의 몸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미 부산에서 사역하고 있던 캐나다 출신 선교사 제임스 게일을 만난 데이비스는 하룻밤 동안 조선을 향한 선교 비전을 토해내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날 밤 데이비스가 게일에게 전한 내용 중 일부다.

“부산까지의 여정은 ‘넘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쪽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아프다는 겁니다. 주님께 기도합니다. ‘건강하거나 약하거나 살거나 죽거나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구원자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게일 선교사는 헨리 데이비스로부터 들은 내용을 편지에 담아 데이비스의 여동생인 메리 데이비스에게 전했다.

고작 34세. 조선을 향한 선교 열정을 꽃 피우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데이비스 선교사의 부고는 그를 파송했던 호주 멜버른의 스캇장로교회에도 전해졌다. 모두 깊은 슬픔에 빠졌다. 하지만 그의 죽음 앞에 흘린 눈물이 조선을 향한 선교의 열정으로 승화한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이비스의 죽음은 호주 선교사들이 조선 선교에 적극 동참하는 결정적 동인이 됐다. 부산 복병산 자락 외국인 묘역 어딘가에 묻힌 데이비스 선교사가 복음의 큰 나무를 위한 ‘첫 씨앗’이 된 셈이었다.

1891년 12월 매케이 목사 부부 등 9명의 호주 선교사가 부산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부산 시내에 ‘호주장로교선교회’ 사무소를 설치했다. 이듬해엔 호주장로교 초량선교부 사무소를 열며 선교의 지경을 넓혀 나갔다. 호주 교회는 일제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교사들을 강제 추방한 1941년까지 50년 동안 78명의 선교사를 꾸준히 파송했다.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 열정은 뜨거웠다. 부산과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 병원과 고아원을 속속 세워나갔다.

1900년 10월 29일 호주 선교사로는 10번째로 도착한 엥겔 선교사(한국명 왕길지)는 초창기 선교사 중 가장 걸출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부산과 울산, 거제 등 주변 도시를 비롯해 울릉도까지 복음을 전했던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2대 총회장까지 지냈다. 그는 일신여학교 교장으로, 평양신학교에서는 교회사 및 히브리어 교수로도 활약했다.

멘지스 선교사는 1893년 부산 최초의 고아원인 ‘미오라’를 세웠다. 이 고아원은 훗날 일신여학교로 성장한다.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1919년 부산 3·1만세운동의 선봉에 섰던 일화는 유명하다. 매킨지 선교사는 1910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시설을 건립했다. “아들을 낳으면 내 뒤를 이어 조선 선교사로 보내겠다”고 장담했던 매킨지 목사는 딸만 둘을 뒀다. 아들을 통해 잇겠다던 사역은 딸 헬렌과 캐서린을 통해 꽃을 피웠다. 한국전쟁 중 부산에 온 ‘매킨지 2세들’은 1952년 일신부인병원을 설립했는데, 바로 일신기독병원의 전신이다.

데이비스 선교사가 입국했던 1889년부터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1941년까지, 1세대 호주 선교사들의 사역 흔적은 에디스 커와 조지 앤더슨 선교사가 기록한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회 한국 선교 공식 보고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교 보고서는 최근 ‘호주장로교 한국선교역사 1889-1941’(동연·사진)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

보고서 번역과 책 발간 작업을 총괄한 영등포산업선교회 국제연대국 국장인 양명득 목사는 “1941년 한꺼번에 추방당했던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쓴 중요한 사료”라고 소개했다.

호주 교회는 한국전쟁 후 매킨지 목사의 딸들을 필두로 줄지어 선교사를 파송한다. 2세대 호주 선교사들은 부산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활약했다. 1950년대 이후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만 8명의 호주 선교사가 사역했다. 일신기독병원엔 1980년대까지 의료 선교사들이 활동했다. 데이비스선교회 회장인 이종삼 목사는 8일 “호주 선교사들의 사역을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을 한국과 아시아, 나아가 세계 선교를 위해 헌신하며 복음의 꽃을 다시 피우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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