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고통 속에 깃든 힘 기사의 사진
정현 ‘서있는 사람들’. 파리 팔레루아얄 정원. 2016∼2017
오랜 세월 기차의 속도와 무게를 견뎌낸 침목(枕木)이 조각이 되었다. 돌들이 깔린 철로에 누워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기차를 받쳐주느라 침목은 흉터투성이다. 조각가 정현(1956∼)은 침목의 그 거칠고 황량한 물질성에 끌려 반추상의 인체 조각을 만들었다. 깊게 파인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까지, 찌든 빛깔은 찌든 빛깔 그대로 살려가며 거대한 직립 인간으로 환치했다. 이처럼 고통의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했기 때문일까. 그의 인간 군상에선 억압에서 튕겨져 나온 에너지들이 가득하다. 무덤덤하지만 더없이 파워풀하다.

정현의 침목 작업은 금호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소개된 데 이어 최근에는 파리에서도 소개됐다. 그의 조각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프랑스 미술기획자의 주선으로 팔레루아얄(왕궁) 정원과 생클루 국립공원에서 정부 초청 개인전이 열렸다. 팔레루아얄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던 곳이어서 억눌린 것에 새 힘을 불어넣은 그의 작업과 절묘한 하모니를 이뤘다.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자 두 달 반 예정됐던 전시는 장소가 추가되며 1년으로 늘어났다.

모진 시간을 견뎌온 침목이 억압의 세월을 이겨내 온 인물 조각으로 형상화돼 파리의 역사적 공간에 입성하면서 ‘순환의 드라마’가 써진 셈이다. 우리 역사는 그렇게 프랑스 역사와 조우했다. 이는 예술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에 애정을 쏟으며 그 속에 담긴 에너지를 끄집어내온 작가는 말한다. “오랜 고통에는 힘이 내재돼 있다”고.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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