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철륜 <11> 노엘찬양단 창단… 12년간 자비량으로 봉사

꿈에서 “왜 찬양사역 하지 않느냐” 음성… 전문 음악인들과 병원·고아원 등서 공연

[역경의 열매] 김철륜 <11> 노엘찬양단 창단… 12년간 자비량으로 봉사 기사의 사진
지난해 봄 경기도 포천의 한 포병부대 교회에서 찬양예배를 드린 뒤 장병들과 함께한 노엘찬양단원들. 뒤에서 둘째 줄 왼쪽 세 번째가 필자다.
2005년 5월쯤이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빠졌는데, 꿈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왜 너는 찬양사역을 하지 않느냐?” 내가 대답했다. “예, 찬양사역을 하겠습니다.” 잠에서 깼을 때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찬양사역을 하라고 요청하신 거구나.’

이 경험은 ‘노엘찬양단’을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됐다. 찬양단을 만들기로 하자마자 테너와 소프라노, 피아니스트 등 전문 음악인이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했다. 20명에 달했다. 모두 다 찬양사역에 집중하는 교회 사역 방향에 공감한 이들이었다. 이들 찬양대원은 자연스럽게 예안교회 창립 주역이 됐다.

노엘찬양단에는 6가지 불문율이 있다. 첫째, 이단 등 불건전한 단체를 빼고 부르는 교회나 단체는 어디든지 찾아간다. 둘째, 자비량으로 봉사하며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셋째, 찬양곡만 찬양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높인다. 넷째, 반드시 연주복을 갖춰 입고 무대에 선다. 다섯째, 가능한 한 식사대접을 받지 않는다. 여섯째, 반드시 말씀과 함께하는 ‘힐링 찬양예배’를 주관한다.

이런 원칙을 품고 지난 12년 동안 달려 왔다. 강원도 산골 교회에서 도시 대형교회들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어떤 때는 찬양단원 수보다 적은 교인이 있는 교회에서 찬양예배를 드렸다. 병원과 고아원, 양로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충남 대천에 있는 한 교회에 들렀을 때였다. 클래식 음악인들이 찬양한다고 하니까 성도들이 그다지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찬양과 성경 메시지가 이어지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찬양예배를 마칠 때 즈음에는 은혜의 공동체를 경험했다. 어떤 할머니 성도는 거칠고 투박한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 주시며 고마움을 표했다. 주님의 능력과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또 하나 있다. 2년 전 어느 봄날, 전남 여수 애양원에서 드린 찬양예배였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이신 손양원 목사님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엔 30년 넘게 갈라진 채 예배를 드리던 두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노엘찬양단이 온 날, 양 교회 성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찬양예배를 드렸다. 노엘찬양단이 두 교회를 하나로 모이게 만든 메신저가 됐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단순한 음악회가 아닌, 찬양예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크나큰 기쁨이다.

교회음악 전문가 입장에서 예배 찬송에 관한 나의 지론은 확고하다. 예배 찬송은 그 대상이 반드시 하나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 찬양을 서서히 잃어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준비 찬송’처럼 예배를 준비하기 위한 도구로 찬송을 부르거나 짧은 예배시간에 쫓겨 4절까지 있는 찬송을 “1절, 4절만 부릅시다”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배와 찬송의 본질에서 어긋난 행태다.

이렇게 변질된 데는 예배 초점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맞춘 탓이다. 한마디로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난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빚어지는 분쟁과 갈등의 중심을 들여다보면 하나님보다는 인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발생하는 일이 대다수 아닌가. 그런 단면들이 가장 중요한 예배 찬송에까지 나타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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