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수난의 길’에 빛바랜 시간을 덧입히다

김석 시인, 연작시집 ‘비아 돌로로사’ 펴내

예수님 ‘수난의 길’에 빛바랜 시간을 덧입히다 기사의 사진
김석 시인이 자신이 출석하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창천교회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시인은 최근 시집 ‘비아 돌로로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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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한날 극동/이방의 순례자 나는/은하계 별빛 목마름으로/마른버짐처럼 땅 팔레스티나로/새끼나귀를 타고 오셨다는 성삼위/비아 돌로로사 예수의 14처소의 길을/뛰는 가슴, 두 손의 목마름을 여미며/사람의 아들 예수가 걸었던 길 찾았습니다.”

(‘비아 돌로로사’ 프롤로그 중에서)


김석(76·창천교회 장로) 시인이 시집 ‘비아 돌로로사’(문학수첩)를 최근 펴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슬픔의 길’ ‘수난의 길’이란 뜻의 라틴어다. 로마의 재판정이었던 안토니우스 요새(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400m 남짓한 길이다. 예수님이 당시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이 길의 14개 처소엔 표지판과 기념건물이 있다. 시집은 비아 돌로로사 14개 처소에 대한 연작시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창천교회에서 만난 김 시인은 “2012년 성지순례 후 3년간 구상과 2년의 집필과정을 거쳐 시집을 완성했다”며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걷던 그 길을 순례하며 분단 조국의 아픈 역사와 현대의 상황을 수평과 수직으로 대입해 생각해 봤다”고 말했다. 시인의 생각은 14개 처소에 개인과 민족의 빛바랜 시간을 덧입혀 믿음의 언어로 태어났다. 분쟁의 땅 팔레스타인과 분단 조국의 70년, 그리고 현재를 시 속에 병치시켰다.

“돌아보니, 죽어 산 예수와 나의 만남은/중학 시절 언덕 위 종탑과 작은 예배당/비가 그친 하늘엔 더러 무지개를 둘렀고/실루엣처럼 땅에는 아지랑이가 일렁거렸습니다/풍금소리가 파도를 재웠던 작은 예배당 그 시절/물 먹은 밤하늘 은하 길은 하나님의 편지였습니다.”(‘제1처소’ 중에서)

‘제5처소’에선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진 구레네 사람 시몬을 통해 디아스포라 민족의 아픔을 형상화했다.

“유월절 예루살렘을 찾은/디아스포라 구레네 사람 시몬/수염으로 땀 닦은 시몬의 아름다운 행적이… 통뼈 무릎까지 불어 통풍 몸 나는/흥남 철수 때도 오지 못한 두 숙부님이 그리워/돌아누웠지만 새벽이면 할머니의 한숨과 눈물/굽은 허리 할머니 나이테 지난 아픈 무릎의 나/새벽이면 눈 씻어 나를 보고 말 씨 나를 고르는/분단 나라의 디아스포라.”(‘제5처소’ 중에서)

로마서 1장 3∼4절 말씀을 묵상하며 작품을 썼다고 밝힌 김 시인은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이 부활의 길”이라고 역설하며 “성경 말씀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언로(言路)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명섭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평석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는 낯선 하나님의 ‘잔인한 자비’ 또는 ‘뼈아픈 자애’의 표현이다. 십자가는 잔인스럽게 보이지만 자비로운 부활의 봄”이라며 “시인의 비아 돌로로사는 십자가 부활이라는 초월적인 역설을 증거하는 진리”라고 밝혔다.

김석 시인은 197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환상예배’ ‘우슬초로 씻으소서’ ‘도산서원가는 길’ ‘광화문’ 등이 있다. 기독교문학상, 크리스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부산 브니엘고, 숭실고 국어교사를 지냈다.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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