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안정 찾았는데 다음날 군 투입” 경찰의 5·18 보고서 기사의 사진
전남경찰청은 11일 경찰의 감찰자료를 확인한 결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나주경찰서 함평지서 등의 무기탈취 시간이 조작됐다고 밝혔다. 계엄군은 시민들의 무기탈취로 인해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 자료에는 남평지서 무기 탈취 시간(5월 21일 오후 1시30분)이 발포시간(낮 12시59분) 이후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남경찰청 제공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을 경찰의 시각에서 되짚어 본 뒤 작성된 보고서가 11일 발표됐다.

전남지방경찰청은 5·18 전담(TF)반을 구성해 지난 4월부터 5개월 동안 관련 조사를 벌인 뒤 ‘경찰관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속 전남경찰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5·18 이전 시위 상황과 경찰의 대응, 계엄군 투입 직전 시위현장 분위기, 시위대의 경찰관서 등 무기 탈취, 계엄군의 발포와 경찰의 해산, 교도소 습격과 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 5·18 이후 신군부의 조치 등이 자세히 기록됐다.

보고서에서 당시 기동대원과 경찰국 상황실 한 근무자는 “5·18 이틀 전인 16일에는 고등학생과 일반시민이 가세해 최대 1만여명이 운집했지만 최루탄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며 “시위가 끝나면 경찰과 주최 측은 음료수와 빵을 나눠 먹기도 하고,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나누며 큰 충돌도 없었는데 17일 자정 공수부대가 투입됐다”고 증언했다.

당시 도경찰국 경비계 근무 경찰관도 “5·18 하루 전인 17일에는 동원부대에 대해 휴식을 주거나 지원부대를 복귀시키는 등 광주시내는 안정을 되찾았고, 평화로운 날이었는데 다음 날 시내 전역에 군이 배치됐다”고 전했다.

전남경찰은 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이 무기고를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해 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집단 발포를 했다는 기록도 조작·왜곡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동안 계엄군의 주장과 기록이 상당 부분 왜곡됐다는 얘기다.

특히 군의 집단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 2000명이 넘는 도청 경비 경찰관들이 광주시민의 도움으로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무사히 복귀했다는 점도 기록됐다. 당시 기동중대장직을 수행했던 경찰관은 “장비와 진압복을 벗은 채 문화방송과 전남여고를 지나 동명동 인근에 다다르자 주민들이 전투경찰대원인 것을 알아보고 ‘내 새끼들 고생한다’며 서로 집으로 데려갔다”면서 “각기 흩어져 들어간 집에서 지내다 옷을 얻어 입고 무사히 귀가했다”고 회상했다.

한편 5·18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과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 등을 조사 중인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이날 광주를 방문해 목격자와 제보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특조위는 오는 13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목격자와 제보자를 만나 증언을 비공개로 청취한다.

특조위는 또 광주시의사회,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기독병원, 적십자병원, 국군의무사령부 등에 5·18 당시 진료기록부를 포함한 관련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해당 의료기관에 근무한 관련자들의 진술도 청취하기로 했다.

광주·무안=장선욱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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