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출국 때 1만원, 영화 볼 때 3%… ‘부적절 준조세’ 손본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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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세금 ‘부담금’ 연 20조 규모
평가단, 4개 중 1개꼴 “타당성 없다”
정부 “내년 초까지 개선안 마련할 것”

영화관에 가서 1만원짜리 입장권을 끊을 때마다 관람객들은 약 300원(3%가량)의 부담금을 내고 있다.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과 진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과되는 ‘영화상영관입장권 부과금’이다. 알게 모르게 관람객들이 낸 부담금은 지난해에만 496억6500만원이나 된다. 2008년 274억6300만원에서 배가량 늘었다.

출국납부금 역시 국민들이 잘 모른 채 내고 있는 부담금 중 하나다. 관광진흥개발기금법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출국자들은 1인당 1만원의 출국납부금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를 타고 출국하는 경우에는 1인당 1000원을 내야 한다. 지난해 징수된 금액은 2959억원에 이른다.

영화표 부과금·출국납부금 ‘부적절’

두 부담금은 올해 3월부터 기획재정부 의뢰로 진행된 부담금 운용 평가 대상에 포함됐다. 국민일보가 11일 입수한 부담금 평가용역 보고서(초안)에 따르면 평가를 진행한 부담금운용평가단(이하 평가단)은 두 항목에 대해 모두 ‘조건부 존치’ 평가를 내렸다.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운용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평가단은 영화상영관입장권 부과금에 타당성이 결여돼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영화 상품의 소비자가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진흥 사업 수행의 원인제공자이거나 직접적인 수혜자로 보기 어렵다”며 “부담금 사업으로 추진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적고 있다. 관련 공익사업의 직접적 이해관계자가 아닌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것은 본래 부담금 부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출국납부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부적절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국외 출국자가 국내 관광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자도 아니고, 국내 관광의 진흥으로 이익을 받는 수혜자도 아니라는 게 평가단의 판단이다. 해외관광에 대한 일종의 벌칙적 성격도 희미해졌다. 평가단은 “관광진흥개발기금의 재원 조달을 위한 행정편의 외에는 부담금 운영 원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걷어간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영화발전기금 중 여유자금으로 노는 돈은 2300억원이 넘는다. 관광진흥개발기금의 여유자금은 2100억원에 이른다. 여유자금을 감안하면 현재 부과 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평가단은 출국납부금을 폐지하거나 절반으로 낮춰도 기금 운용에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4개 중 1개꼴로 부담금 운용 부적절

영화상영관입장권 부과금과 출국납부금처럼 운용이 부적절하다고 평가된 부담금은 수두룩하다. 평가단은 올해 평가 대상인 42개 부담금 항목 중 총 11개 항목에 ‘폐지’ 또는 ‘조건부 존치·폐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담금 4개 중 1개꼴로 문제가 있으며 개선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지적을 받은 부담금 항목 규모는 2015년 징수액 기준으로 3조4684억원에 이른다. 다만 평가단 관계자는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라 결론이 일부 수정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정부는 2002년 부담금관리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민간 전문가로 평가단을 구성해 부담금 운용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3년 단위로 전체 평가를 해 오다 2010년부터 전체 항목을 3분의 1로 나눠 매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올해는 산업·환경·문화·금융 분야의 42개 부담금을 대상으로 평가가 진행돼 왔다.

평가단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부담금에는 회원제 골프장 입장료 부과금도 포함됐다. 회원제 골프장 이용자들은 1인 1라운드 기준으로 입장료에 따라 1000∼3000원의 부과금을 내고 있다. 평가단은 “관행상 이어져 온 부담금으로 판단된다”고 보고서에 기록했다. 이미 골프 소비에 대해 개별소비세가 부과되고 있어 이중과세 문제가 제기될 뿐만 아니라 회원제 골프장 자체가 줄고 있어 해당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유차 보유는 환경오염 유발?

경유차 소유자들에게 물리는 환경개선부담금 역시 평가단의 집중 검토 대상이 됐다.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지적과 함께 경유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배기량과 차령, 지역에 따라 산출되는 부담금을 납부해 왔다. 지난해 징수된 금액만 5062억원으로 그간 누적된 징수액은 11조원 규모다.

문제는 부담금이 부과되는 논리다. 경유차가 환경오염을 유발하려면 차를 운행해야 한다. 하지만 환경개선부담금은 경유차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부과되고 있다. 평가단은 “환경오염 자체가 아닌 소유에 대해 부과하는 중이므로 존립의 타당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뿐만 아니라 징수율 역시 50% 미만으로 낮은 상황이라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처럼 오염원의 보유 자체에 부과하는 것보다는 수송용 에너지에 대한 과세가 더욱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담고 있다. 운행량에 따른 과세가 가능할 것이란 설명이다. 결과적으로는 교통·에너지·환경세로 부담금을 통합하고 기존의 부담금은 없애는 것이 낫다고 봤다.

지난해에만 2조원이 넘게 걷힌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역시 향후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은 전력산업을 위한 기반사업에 쓰인다. 부담금은 전기요금의 3.7% 요율로 전기 소비자들에게 부과되고 있다.

평가단은 “부담금으로 수행되는 사업이 전력산업의 전반적인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공익사업에 해당하지만 요금을 지불하고 전력을 사용하는 전기 사용자들에게 사업에 대한 재정적 책임까지 지도록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사업으로 인해 수혜를 입는 사람과 전기 사용자들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일부 부담금 항목은 폐지 또는 통폐합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 사용자 일시부담금은 폐지 1순위로 거론됐다. 신규로 전기 공급을 신청한 주민이 설치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내는 부담금이다. 하지만 신규 전기 공급 신청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지난해 전기 사용자 일시부담금 징수액은 고작 300만원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 같은 평가단의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개선책을 논의해나갈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평가단이 내용을 부담금운용심의위원회에 보고한 뒤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내년 초까지 개선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담금=공익사업 경비를 그 사업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에게 부담시키기 위해 부과하는 금전급여의무. 세금과는 별개로 부과되기 때문에 광의의 준조세로 불린다. 내년 운용될 부담금은 총 89개 항목, 19조9000억원 규모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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