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여년 전 한글 성경들, 루터의 ‘오직 성경’ 웅변하는 듯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종교개혁 500주년 기획전

130여년 전 한글 성경들, 루터의 ‘오직 성경’ 웅변하는 듯 기사의 사진
경기도 이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획전’에 전시된 성경과 사진 등 한국교회 초기 사료들. 이천=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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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문: 하나님이 어느 곳에 계시뇨. 답: 천지 각처에 계시지 아니한바 없느니라….’

한국 땅에 선교사가 들어오고 복음이 전파된 지 10년쯤 지난 1895년 제작된 ‘셩경문답’ 첫 페이지엔 당시 누군가가 묻고 답했을 기독교 교리 문답 내용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또 다른 전시실에서는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가 처음 간행한 한영사전인 ‘한영자전’(1890)도 눈에 띄었다. 이와 더불어 1897년 제임스 게일 선교사가 만든 한영자전은 ‘성경 번역의 나침반’으로 당시 선교사들의 필수품이자 필독서였다.

11일 들른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전시실엔 초창기 한국교회 신앙 선배들의 믿음의 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 사료를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에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종교개혁이 연 새 세상’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한글성경번역과 교육, 예배, 근대화 등을 주제로 한 사료를 비롯해 성서와 사진 등 180여점이 전시 중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한국교회 초창기 한글 번역 성경이었다.

‘신약 마가젼 복음셔 언해’(1885)는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이수정 선생이 국한문 혼용으로 펴낸 쪽복음이다. 2년 뒤 언더우드와 헨리 아펜젤러가 함께 이를 수정·번역한 마가복음서인 ‘마가의 전한 복음셔 언해’도 눈에 와 닿았다. ‘상제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으로 시작하는 이 쪽복음은 국내에서 이뤄진 성경 번역의 첫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글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1800년대 말 번역된 성경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오직 성경’이라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기획전 준비에 동참한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역사신학 교수는 “1885년 선교사들이 국내 입국 직후 한영·영한사전을 만들어 성경을 번역한 일은 기독교 토착화에 있어서 큰 공헌”이라며 “이는 500년 전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종교개혁의 역사와도 맥을 같이하는 자랑스러운 선교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의 생활상’을 포착한 선교사들의 서적도 눈여겨볼 만하다. 언더우드 선교사 부인인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가 조선의 생활상을 기록한 ‘상투잡이와 함께한 한국생활 15년’(1904)이 대표적이다. 선교생활 초반 15년을 정리한 책인데, 내한 초기 명성황후의 전속의사로 궁궐을 자주 드나들면서 목격한 정치와 외교사건 및 초기 선교사들의 활동이 담겨 있다.

미국 선교사 헤이든 기포드의 선교체험 보고서 ‘한국의 일상생활’은 미국 북장로회를 중심으로 초기 선교 상황을 소개한 책이다. 한국인들의 일상생활 모습까지 담고 있어 후배 선교사들의 지침서가 되기도 했다.

120여점의 사진자료도 흥미롭다. 조선인 남성으로부터 한글을 배우는 여성 선교사들의 사진(1906)과 게일 선교사의 부인 깁슨 선교사와 길선주 목사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등은 좀처럼 접하기 힘든 초창기 한국교회의 흔적들이라고 이일구 박물관 교육사는 귀띔했다.

특히 벽면에 촘촘히 전시돼 있는 사진들 속에는 선교사 이수정 선생부터 성경 번역 중인 레이놀드 선교사, 한복 입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가족, 자전거를 타고 순회선교를 떠나는 선교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100여년 전 목숨을 걸고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했던 ‘복음의 전령사들’ 앞에서 걸음을 멈칫하며 고개를 숙이는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 김동희(서울 진관감리교회) 집사는 “복음이 이 땅에 전해진 여정을 엿볼 수 있었다”면서 “신앙 선배들이 품었던 믿음의 열정을 되새기며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인 역사박물관장은 “연말까지 열리는 이번 기획전을 통해 많은 성도들이 초창기 선교사들의 열정과 숨결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천=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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