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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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CD다’라고 했다. 태어나(Birth) 죽기(Death)까지 끊임없는 선택(Choice)의 연속에 놓여 산다는 의미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세 차례나 반복된 명령어는 그럴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이 우리에게 있음을 전제한다. 그런데 이 선택이 힘든 것은 그 안에 붙어있는 단서 때문이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단서들은 단지 좋은 조건과 좋은 형편과 좋은 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과 핍박이 있는 교회였다. 서신서 곳곳에는 교회가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해 직간접적인 암시가 나타나 있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앞서 실천한 인물은 구약의 예언자 하박국이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경악했다. 심판의 메시지를 들은 하박국은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합 3:16)라고 적고 있다.

그 순간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는 말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은 선택하고 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쁨을 선택하고 있다. 이 놀라운 선택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본래 하박국이 받아든 문제의 선택지에는 즐거움과 기쁨은 보이지 않도록 가려져 있었는데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유치원에 다니던 막내에게 가끔 유치한 질문을 하곤 했다. “신유야, 신유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그리곤 선택을 하도록 불러준다. “1번 아빠”라고만 말한다. 제시한 선택의 가짓수는 하나밖에 없고 그 선택에는 아빠밖에 없다.

아이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자기가 번호를 붙여 선택을 이어간다. “2번 엄마, 3번 오빠, 4번….” 그리고 답을 내놓는다. “정답은 2번, 엄마.” 아이에게 낸 문제는 아이를 시험하는 문제였다.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잘못된 전제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당장 눈앞의 답을 받아들이지 말고 선택의 가짓수를 늘려야 한다.

삶이 힘든 탓인지 잘못된 선택에 속아서인지,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선택하려 하지 않고 알아서 선택해주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보려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만 보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아야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며 다시 보아야 한다. 경건한 노인 시므온은 마침내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두 팔에 안고 고백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눅 2:30∼31).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왼편 강도는 소망이 아닌 절망을 선택했다. 그러나 다른 편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 말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오른편 강도는 양팔과 양발이 십자가에 못 박힌 상황에서도 선택했다. 그에게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고 하셨다. 어떤 상황에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으며,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

1850년 12월 24일 밤, 도스토옙스키는 지붕도 없는 썰매를 타고 혹한의 시베리아로 유형(流刑)을 떠난다. 그는 사형 집행장에서 사형을 면제받던 날 형에게 편지를 썼다.

“형님, 나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삶은 삶입니다. 삶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불행 속에 있어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이며 인생의 목적 아니겠습니까?”

그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성경을 숙독하며 인생관과 세계관을 다듬어 갔다. 그리곤 주옥같은 소설들을 썼다. 우리는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

박노훈 (신촌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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