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음악으로 극복한 장애… 행복을 연주해요

지적장애인 첼리스트 김어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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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김어령씨가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어머니 송명애(서울 온누리교회) 권사에게 첼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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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 바리톤 김동규와의 협연, 미국 체코 독일 홍콩 등지에서의 앙상블 연주회, 2014년 문화체육부장관상 음악부문 표창…. 첼리스트 김어령(34)씨가 걸어온 삶이다.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천재’란 수식어를 달고 세상의 조명을 받을 법하지만, 그는 첼리스트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지적장애인(2급)이다.

“방가씁미다. 첼리스트 김어령임미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밤고개로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 사무실에서 어머니 송명애(57·서울 온누리교회) 권사와 함께 만난 김씨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인사를 건넸다. 어눌한 발음에선 평생 짊어져 온 장애가 묻어났다. 그러나 깔끔하게 빗어 올린 헤어스타일과 협연을 앞둔 첼리스트가 지휘자에게 악수를 건네는 듯한 인사매너는 천생 아티스트 같았다.

아무런 징후 없이 건강하게 자라던 김씨에게 장애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생후 두 돌을 맞고 나서였다. 주변에서 “어령이가 또래에 비해 유독 걸음마가 느리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송 권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아 본 정밀검사에서 하나뿐인 아들이 뇌수종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아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의 끈을 놓진 않았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기를 거치면 말끔히 치료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두 차례 수술대에 올랐지만 차도가 없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그 상황이 받아들여지더군요. 수술 앞두고 1년여 동안 매일같이 ‘우리 어령이 정상인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어느 날 어렴풋이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하나님 계획 안에는 어령이가 장애를 가져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요.”

더디기만 한 행동·언어 발달에 비해 김씨의 예술적 감각은 떡잎부터 달랐다. 운동치료를 유독 힘들어하던 김씨의 몸을 일으킨 것도 엄마의 노래였다.

“6살 땐 택시에서 가수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듣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안 내리겠다고 버티는 통에 기사님과 신기해하기도 했어요. 그 후로 동요부터 베토벤, 모차르트까지 어령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하루 종일 들려주고 남편이 쓰던 기타, 고물상 아저씨가 갖다 주신 바이올린 등 악기를 항상 곁에 뒀죠.”

첼로와의 인연은 1999년 온누리 사랑챔버오케스트라(단장 손인경)의 창립 멤버가 되면서 시작됐다. 고 하용조(서울 온누리교회) 목사가 장애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하면서 발달장애인과 지적장애인 5명이 단출하게 모인 자리에 김씨는 첼로와 함께 어색하게 앉았다.

어색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김씨는 첫 첼로 선생님이었던 정현애(서울 온누리교회) 권사에게 “30년 동안 첼로를 가르쳐 봤지만 이렇게 음을 잘 찾는 아이는 처음 본다”는 칭찬을 들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처음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어 했던 김씨는 의자에 앉아 첼로를 안은 지 일주일 만에 엄마에게 말했다. “첼로 좋습니다.”

날로 실력이 늘어가는 김씨 연주에 사람들은 “뛰어난 재능” “천재”라며 박수를 보냈지만, 그 이면엔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뇌병변 장애를 겪은 김씨는 활을 잡아야 하는 오른팔에 떨림이 있어 이를 고정하는 데만 수개월을 보내야 했다. 오른쪽 엄지손가락 첫 번째와 두 번째 마디 사이엔 근육이 하나 없다. 송 권사는 “활을 잡고 힘을 조절해야 하는 첼리스트로서는 치명적인 장애요소라 초기엔 소리가 뜨고 스타카토도 섬세하지 못했다”며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장애인특별전형도 없던 시절에 오로지 실력만으로 백석예술대 입학과 세종대 편입, 세종대 대학원 졸업이라는 과정을 통과했다. 그사이 온누리 사랑챔버오케스트라와 밀알앙상블(음악감독 김형은) 단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연주를 펼쳤다. 어느 곳을 가든 음악을 경험하기 어려운 지역의 학교와 장애인센터 등이 최우선 무대였다. 송 권사는 “어령이가 언젠가부터 자기 연주를 듣고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관객들에게서 발견하는 걸 느꼈다”며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본인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설명을 듣던 김씨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첼로를 안고 앉았다. 뮤지컬 ‘캣츠(Cats)’의 OST ‘메모리(Memory)’의 선율이 공간을 채웠다. 아들의 연주를 듣던 엄마의 표정에도 미소가 흘렀다.

‘행복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예요.’(캣츠 OST ‘메모리’ 중에서)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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