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환난이 만들어 내는 부끄럽지 않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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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2편 12∼18절

성도가 삶 속에서 거룩을 이뤄가는 과정에는 환난과 고통이 동반됩니다. 성경은 환난 자체를 즐거워하라고 할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환난 자체가 만들어내는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2편은 그런 고통 가운데에서 어떻게 주님께 기도하고,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소망을 갖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생명이 풀의 시들어짐과 같다고 탄식합니다(11절). 신자에게는 사탄이 육체적 관계적 영적인 면을 총동원해 환난을 가합니다. 그런데 거룩을 추구하는 성도에게 왜 이런 환난이 있어야만 할까요.

사실 성도에게 최대 난적은 외부의 이교도가 아니라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맹신과 광신의 위험입니다. ‘맹신’이란 바른 말씀의 적용 없이 자기가 좋은 구절을 골라서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을 뜻합니다. ‘광신’이란 위와 같은 맹신으로 말미암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고통을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자기 과신’이라는 교만과 ‘자기 상처’라는 쓴 뿌리를 가진 상태에서 말씀 없는 종교행위만 매달리면 얼마든지 괴물 같은 맹신과 광신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우리에게서 자기 과신과 자기 상처를 없애고 대신 바른 말씀을 심기 위해 허용하신 방법이 환난입니다. 이 때문에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환난은 반드시 인내를, 인내는 연단 즉 검증된 인격을, 그리고 연단은 결국 소망을 이뤄주기 때문입니다(롬 5:3∼4). 여기서의 소망은 내가 바라고 고대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바르고 고귀한 소망입니다.

이 때문에 시인은 극적인 반전의 고백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지금은 주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정한 기한이 다가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13절). 이것은 환난을 통해서 연단 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소망을 이뤄주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며, 풀 같은 자신이 시들고 나면 정금 같은 말씀이 드디어 일하기 시작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시온이 회복되는 날이 되면 주의 종들은 시온의 돌과 티끌도 즐거워하게 될 것이고(14절), 뭇 나라와 모든 왕들도 친히 시온을 건설하신 여호와의 영광을 경외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15∼16절).

그리고 시인은 시온이 건설되는 일에서 환난으로 인해 빈궁해진 자신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고 사용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17절). 맹신과 광신은 스스로 큰 자로서 기도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부끄럽지 않은 소망을 이루는 기도는 끊임없이 자신이 비천한 자인 줄 알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끊임없는 환난을 통해 불순물 없는 말씀만 남긴 자는 다음세대를 위해 당당히 기록할 수 있는 소망을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망이 다음세대에 전해질 때 우리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신앙을 이룰 것이라 믿습니다.

권지현 목사(서울 다음세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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