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기사의 사진
일은 하는데 일이 아닌 것이 있다. 분명히 일인데 일로 보이지 않는 ‘감춰진 일자리’다. 노동력은 쓰이는데 유상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다. 칼 마르크스는 부불노동(unpaid labor)으로, 오스트리아의 석학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 일컬었다. ‘시장화 되지 않은 노동’인 셈이다. 경제적 효용을 강조하는 시장경제를 넘어 시장의 논리가 공동체 전 부문에 스며든 시장사회가 된 요즘에도 이런 종류의 노동은 일상적이다. 대표 격은 가사노동이다. 남성의 노동은 가치 있는 경제적 투입요소로 인정받는 반면 여성의 가정 일은 모성으로 포장돼 억압 수단으로 간주됐다는 관점이 있다. 미국 여성 사회학자 낸시 초도로우는 저서 ‘어머니노릇의 재생산’에서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날카롭게 비판했다. 가사노동은 누군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적이고 유용한 것임에도 ‘어머니다움’이란 오도된 인식이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잉여의 몫은 철저히 남성들이 나눠 갖는다고 지적했다.

돌봄노동도 마찬가지다. 집에서의 노인이나 환자 돌봄은 으레 여성이 하는 무상의 노동으로 여기는 풍조가 여전하다. 예술인들의 창작노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만족의 효용성은 있을지 모르나 교환가치는 ‘0’에 수렴돼 시장의 관점에서는 ‘굳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으로 평가된다. 팔리지 않는 작품, 청중이 들지 않는 연주회, 읽히지 않는 책 등은 창작에 소요된 노동의 경제적 요구를 무력화시킨다.

정부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공식 통계로 삼기로 했다고 한다. 16일자 한 조간신문 1면에 크게 보도된 내용이다. 내년 3월까지 기본계획을 만들고 같은 해 하반기에 통계 개발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통계청이 가사노동의 보이지 않는 값을 화폐적으로 측량 한다는 것은 국내총생산(GDP) 지상주의에서 한 걸음 비켜서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득통계에 잡히지 않던 이 노동을 계량화함으로써 ‘국가성장’과 ‘국민행복’의 괴리를 메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호텔 요리에는 비싼 값을 매기면서도 엄마가 차린 밥상의 가격은 당연히 ‘0’원이란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사노동 같은 부불노동을 양지로 올려 적절한 사회적 보상이나 경제적 평가를 모색해야 한다. 이는 또 다른 의미의 일자리 대책일 수 있다. 일인데 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횡포다.

글=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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