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美와 체결해 위기 모면
日과는 정치적 이유로 연장 무산
韓·中 체결 놓고는 엇갈린 평가
정부 “기회 되면 해야 하는 것”
추석 연휴를 전후해 한·중 통화스와프 협정의 연장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었다. 중국이 미적대는 동안 ‘꼭 연장해야 하느냐’ ‘중국과 통화스와프가 필요한가’를 두고 갖가지 의견이 쏟아졌다. 협정은 결국 연장됐지만 의문부호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통화스와프가 무엇이기에 정부에서 전력을 쏟는 것일까. 통화스와프는 정말 ‘외환위기의 안전판’인가. 여전히 남은 물음표를 추적해 봤다.
통화를 교환(swap)하다
통화스와프란 거래 당사자들이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통화(화폐)를 맞교환하는 외환거래다. 개인, 기관, 국가 간 이뤄질 수 있는 거래다. A와 B라는 두 나라가 통화스와프를 맺었다고 치자. A가 외환이 필요한 비상시기에 놓였을 때 미리 정해놓은 환율에 맞춰 B에 A의 통화를 맡기고, B의 통화나 달러를 빌릴 수 있다.
통화스와프는 본래 금융시장에서 거래하는 파생상품 가운데 하나였다. 주로 기업이 환율·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통화스와프는 국가 간 거래로 확산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은 국가 간 통화스와프에 적극적이다. 처음으로 맺은 통화스와프는 2000년에 만들어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다. CMI는 한·중·일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 회원국 간 통화스와프 거래를 통해 외환위기를 막고자 만든 역내 자금지원제도다. 이것이 확대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 공동기금(CMIM)의 규모는 현재 2400억 달러다. 한국은 기금에서 384억 달러를 분담하고, 이만큼을 위기 시 인출할 수 있다.
이외에 일본(2001년) 미국(2008) 중국(2008) 등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일본, 미국과는 협정 연장에 실패했다. 현재 한국은 중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등과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환리스크 관리와 외교적 거래
통화스와프의 대표적인 효과는 ‘환리스크 관리’다. 외환보유액이 부족해졌을 때 달러나 달러로 교환할 수 있는 외환을 공급받아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다.
한국은 2008년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서 외환위기를 모면했었다. 당시 외환보유액이 2600억 달러(2007년 말)에서 2000억 달러까지 줄면서 경고음이 높았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국제금융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고, 환율 안정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기축통화인 달러(미국)를 두고 구태여 다른 나라들과 통화스와프를 맺는 이유는 뭘까. 우선 교환 가능한 통화를 다양하게 확보해 달러화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대외경제의 충격파를 여러 각도에서 줄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다 ‘외교적 거래’라는 드러나지 않는 효과가 있다. 영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 할수록 그만큼 정치·경제적 관계가 밀접해진다.
한·일 통화스와프의 연장 실패는 국가 간 외환거래나 위기 안전판을 넘어 외교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1년 20억 달러로 통화스와프를 맺은 한국과 일본은 2011년까지 700억 달러로 규모를 확대했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관계가 틀어지면서 그해 만기 도래한 통화스와프는 연장되지 않았다. 그 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을 이유로 통화스와프를 제안했지만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 설치 등을 이유로 협상을 중단했다.
통화스와프의 파급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통화스와프를 맺었더라도 위기가 닥쳤을 때 상대국도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통화 빌려주기를 거부할 수 있다”며 “특히 일본 같이 우리와 인접한 국가들은 경제적 위기에 함께 빠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럴 경우 통화스와프 협정을 사용하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중 통화스와프를 바라보는 시선도 엇갈린다. 일단 금융시장 불안감 해소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북한 리스크로 국내 채권·주식시장에 일부 자금이 이탈하고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가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 통화스와프 협정 연장은 금융시장 불안감을 완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의 국제 결제통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비상상황에 대비할 여력도 커졌다. 정하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에 한·중 통화스와프는 중국과의 냉랭한 외교관계 해결 여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반면 적극적으로 나설 만큼 필요한가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쪽도 있다. 위안화의 국제 결제시장 비중이 아직 낮은 데다 한국경제의 외환보유액이나 단기채무 비중 등을 감안할 때 ‘필수사항’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성 교수는 “중국은 정부가 자본을 통제하기 때문에 통화스와프를 맺었더라도 위기 시 한·중 관계의 상태에 따라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위안을 달러로 바꾸는 것 역시 홍콩 등 일부 역외시장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통화스와프는 다다익선”
외환보유액(지난달 말 기준 3846억 달러)이 충분한데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해야 하느냐는 의문점도 여전히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인호 서울대 교수는 “통화스와프는 유사시 외환보유액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체결과 동시에 외환을 가져온다는 뜻이 아니다. 외환을 빌려오는 때가 온다면 당장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나라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국가는 통화 안정성이 증명돼 국제 투기세력의 접근 자체를 막을 수 있다”며 “이는 외환보유액을 늘려 투기세력에 대응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도 국가 간 통화스와프 체결을 확대할 방침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통화스와프는 다다익선이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기회가 있으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경설 기재부 국제금융과장은 “현재 외화보유액이 적정 수준이라고 보고 있긴 하나 통화스와프는 단순히 금융 부분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체결 상대국과의 경제협력 등 다방면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일러스트=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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