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소설 한 권 뽑아 들고 싶어질 땐…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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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신간 소설 코너를 서성이다 별 소득 없이 돌아선 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 주라면 분명 한 권 이상 건질 수 있다. 출판사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한 번 집으면 내려놓기 힘든 책을 줄줄이 내놨기 때문이다. 영국 맨부커상 수상작 ‘배반’부터 중국 소설 ‘뭇 산들의 꼭대기’, 책 이야기 ‘섬에 있는 서점’, 환경 소설집 ‘곰과 함께’. 모두 재미있다.

‘배반’은 미국 작가 폴 비티의 장편소설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 가상 마을에 노예 제도와 인종 분리 정책이 다시 도입된다는 이야기다. “흑인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물건을 훔쳐 본 적이 없다. 세금이나 카드 대금을 내지 않은 적도 없다”란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심리학자인 아버지로부터 흑인 역사를 끊임없이 공부해온 주인공은 암묵적 질시를 받느니 차라리 명시적인 차별을 받는 편이 낫다는 신념으로 공공도서관이나 영화관에 ‘백인 전용’ 따위의 팻말을 붙이며 인종 분리를 자청한다. 인종 차별에 대한 풍자이자 블랙 코미디라고 볼 수 있다. 유머러스한 장면에 폭소하기도 하고 통찰이 깃든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된다. 맨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이 책은 너무 재미있고 고통스럽다. 이것이 진짜 우리 시대의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맨부커상 제정 이래 처음이었다.

‘뭇 산들의 꼭대기’는 중국 현대사회를 만화경으로 보는 듯 정겨운 느낌을 준다. 주인공 신치짜는 도살업자다. 일본인 어머니와 탈영병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신물이 나도록 놀림을 받았다. 짝을 찾을 때 중매인에게 제시한 유일한 조건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었다. 의롭지 못한 피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신치짜와 연결된 20여명의 기이한 삶을 써내려간다. 수명을 예견하며 비석을 새기는 난쟁이 안쉐얼,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경찰 안핑, 반신불수 남편을 20년째 돌보는 리쑤전…. 이들의 삶은 중국 사회가 직면한 온갖 문제를 드러낸다. 무거운 내용이지만 작가의 문체가 어찌나 천연스럽고 구수한지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작가는 “소인물에게도 높이 솟음이 있다”고 한다. 이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커다란 정신’을 발견해낸다. 이 소설은 중국 문예지 ‘당대’로부터 최고의 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섬에 있는 서점’은 책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달콤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다. 앨리스란 섬에는 아일랜드란 서점이 있다. 섬에 있는 유일한 서점이다. 서점 간판에는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얼마 전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서점 주인 피크리는 성격이 까칠한데다 책 취향도 까탈스럽다.

서점 운영은 어렵기만 하고 포기를 생각하던 피크리. 그에게 꾸러미 하나가 도착한다. 이 정도 설명을 들으면 어찌어찌해서 그가 행복해진다는 뻔한 전개가 그려진다. 하지만 작가는 생각지 못한 반전을 보여주고 재치 있는 문체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쯤 되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수십 개가 넘는다. 어밀리아는 그 중 하나를 골랐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빠져들 소설이다. 작은 책방 하나가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할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미국 도서관 사서 추천도서 1위 작품이다.

‘곰과 함께’의 부제는 ‘어느 상처 입은 행성에서 들려 온 열 편의 이야기’다. 이 행성은 상상대로 지구다. 올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 마거릿 애트우드를 비롯해 유명 작가 10명이 ‘환경 위기와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쓴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 애트우드는 ‘죽은 행성에서 발견된 타임캡슐’에서 황폐한 지구를 섬뜩하게 묘사한다.

“제1 시대에 우리는 신을 창조했다. 제2 시대에 우리는 돈을 창조했다. 제3 시대에는 돈이 신이 되었다. 그것은 전능했고 통제불가능했다. 제4 시대에 우리는 사막을 창조했다. 거기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다.” 소설 4편은 현재, 6편은 미래가 배경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신선한 이야기들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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