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순원] 비정규직 사유 제한의 효과 기사의 사진
일자리위원회와 정부가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했다. 일자리 인프라 구축, 공공 및 민간 부문 일자리 창출, 일자리 질 개선, 맞춤형 일자리 지원 등이 핵심 분야로 포함됐다. 그동안 여러 정부가 일자리 목표와 정책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관련 정책을 종합하고 입법 일정까지 구체화시켜 제안한 종합 청사진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출범 후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및 질 개선에 치중했던 정부가 민간부문으로 그 방향타를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신산업 육성, 사회적경제 활성화 및 지역일자리 창출 전략이 주요 해법으로 제시됐고 비정규직의 활용방식은 기간제한에서 사유제한으로 전환됐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노동시장은 사유에 관계없이 2년 동안 비정규직 근로자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용해 왔다. 기간을 정해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해 온 셈인데 이로 인해 기간제 근로 확대, 2년 사용 후 갱신 거절, 초단기 반복 갱신 등의 문제가 양산되었다. 무엇보다 현행 기간제법이 요구한 2년 이상 지속된 상시 업무에의 정규직 채용은 시장에서 작동하지 못했고,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뛰어든 근로자 대부분은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결국 정부는 논쟁적 해법인 ‘사유제한’의 칼을 들었다.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이면에는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내재한다. 예외적 사유에 한해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제도 전환의 영향은 중소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간제 근로자의 60% 이상은 30인 미만 소기업에 종사한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기간제 근로자 비중은 9.2%에 불과하며 이들 중 70% 이상은 육아·교육 등을 이유로 한 자발적 비정규직이다.

같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근속년수 1년 미만의 신입사원들 가운데 300인 이상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은 4.5%에 불과하며 나머지 95.5%는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 취업자다. 이들 중 53.9%가 비정규직이다. 요컨대,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예외적 사유에 한해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하게 되면 노동시장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이 전향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정책 의도가 현실화된다면 고용불안, 열악한 임금 및 근로조건을 이유로 취업자들의 시선을 받지 못해 온 중소기업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재평가되는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물론 비정규직 사용 규제가 고용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간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노동시장 제도 변화로 인한 일자리의 급격한 증감이 부재했고, 제도가 유연하던 시절에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부진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전환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해도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사용 제한 등의 규제는 기업의 고용 의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의 부작용을 상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임금구조의 합리화, 인사 결정의 사용자 자율성 확대, 근로시간 단축 및 유연화 등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이러저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로드맵의 철학과 목표가 일자리 확대와 질 개선이라는 점에서 그 취지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제안된 목표와 방향이 제도와 관행으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국회에서 해결해야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비정규직 및 근로여건 개선은 대부분 입법이 필요한 과제들이다. 사유제한을 위해서는 기간제법을 고쳐야 하며, 특수형태고용 종사자 및 사내도급 근로자에 대한 보호는 사회보험법, 노조법 등을 손봐야 한다. 무엇보다 야당이 다수인 국회의 사정을 고려할 때 관련된 이슈에 대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분석과 설득을 위한 논리 구성 등이 필요하다. 쟁점에 대한 노사정 간의 사회적 합의 또한 필수적이다. 지금부터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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