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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나미] 수치, 링컨, 그리고 한국의 정치

[청사초롱-이나미] 수치, 링컨, 그리고 한국의 정치 기사의 사진
민주화를 위해 수십년간 자택 연금돼 있다 노벨상까지 받았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최근에 자국의 소수민족 탄압에 대해 보인 일련의 행동 때문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 폐쇄적 민족주의로 정치적 입지를 단단하게 만들려는 아베나 트럼프와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일합병을 겪었고 현재까지도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에서 소수민족으로 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인 중 하나이기 때문인지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수치 여사가 혹시라도 영국인과 결혼해 영국인 아들을 낳았기 때문일까.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서양인과 자신을 더 동일시하고 있는 것일까. 영국으로 유학 갈만큼 혜택 받은 여성이기 때문에 소수의 토착민들이 어떤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훌륭하다고만 알고 있는 링컨도 소수민족의 인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식하고 매정했던 사람이다. 적지 않은 역사학자들이 노예 해방도 흑인 인권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북부 공업 단지가 필요한 노동력을 남부지방에서 빼앗아오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남부와 북부를 화합하게 했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초등학생도 아는 게티즈버그 연설도 남겼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그의 행적은 가혹하고 불의하기 짝이 없다. 영어를 모르는 인디언들을 속여 엉터리 계약서를 써 땅을 갈취하고 약속한 식량과 물자들을 내놓으라 하니 “풀 뜯어 먹다 굶어 죽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당시 미네소타 백인들을 도와 인디언들을 살육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백인들은 저항하는 인디언들을 총으로 굴복시킨 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까지 포함해 많은 이들을 공개 처형했다. 그들에게 원래의 땅 주인인 인디언은 제거해야 할 짐승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링컨의 이중적 행보를 아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다. 위인전부터 주류 학자들의 연구서까지 구미의 인물들은 미화하고 동양이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인디언 아랍 등 서양 중심의 세계에서 소외된 지역의 인물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서구지향적 태도가 심리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중남미 원주민, 아시아인은 대개 더럽고 무식하며 폭력적이고 서양인은 영웅, 현자,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포장되니 동양인들은 서양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얼굴도 뜯어고치고 싶어 할 정도로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한다.

흑인인권 운동가로서 28년여의 세월을 고립된 섬의 독방 감옥에서 지냈지만 대통령이 된 후 백인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은 넬슨 만델라는 그런 점에서 정치적 이익이나 행보를 초월하는 진짜 위인이 아닐까 싶다. 만델라는 간디처럼 가해자들을 큰마음으로 용서하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면서도 피압박자들과의 연대를 놓지 않고 인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념을 넘어서 민족부터 생각했지만 결코 타자에 대한 비인간적 행보를 보이지 않았던 김구 여운형 함석헌 장일순 선생도 이들과 비견되지 않을까.

미숙하고 자아 중심적일수록 타자에 대해 부정적인 것만 투사하고, 타협 없는 일방적 태도를 견지한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기 내부의 악을 대면하면서 타자와 통합의 지향점을 나누려 노력한다. 김정은 아베 푸틴 시진핑 트럼프는 모두 화해보다는 호전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타민족 타국가에 대해서는 깡패와 다름없이 행동해도 환호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이 더 문제다.

우리라도 이성적이고 성숙한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현실적인 국가 역량 개발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법과 윤리 그리고 지구라는 공동체를 고민하는 합리적 사고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이 진짜 선진국이 아닌가 싶다. 제국주의 시절의 독일이나 일본처럼 타자들을 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극단적인 정치에 환호하는 나라의 미래는 결코 건강하게 오래가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나미(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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