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범계 “국가안보 버린 제2롯데월드 인허가 과정도 밝혀야” 기사의 사진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이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적폐청산 작업의 역사적 정당성을 믿는다"며 "국민적 요구는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지난주말 서울 광화문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낮에는 태극기집회가 열렸고 날이 저물자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5개월이 넘었는데 과거의 갈등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국회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정부 첫 국정감사가 열흘 넘게 진행됐지만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이라는 구호 속에 여야의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문재인정부 1호 공약인 적폐청산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언제까지 계속될지를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에게 들었다.

-국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온통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이명박정부에서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적폐청산이 무슨 뜻인지도 헷갈린다.

“적폐의 사전적 의미는 누적된, 중첩된 폐단이다. 이를 없애자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많은 분이 적폐청산이 범죄청산 작업이 됐다고 말한다. 과거의 범죄행위가 자꾸 드러나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은 사안별로 기소가 이뤄졌고, 일부 유죄가 선고됐다. 그런데 처벌보다는 국정농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업을 진행하다가 이명박정부 5년의 여러 폐단이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박근혜정부에서 국정농단을 가능케 한 제도, 문화, 시스템이 이명박정부에 있었다는 점을 밝혀내고 개선하자는 의미의 적폐청산이 된 것이다.”

-정부에 설치된 부처별 TF는 거의 매일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처음에는 청와대에 적폐청산 컨트롤타워를 설치하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그럴 경우 대통령이 사정을 진두지휘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시행되지 않았다. 국정농단은 공적 시스템이 무너져 발생했다. 공무원 조직문화와 결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당해 부처에서 TF를 만들어 자체 조사를 하는 방식이 합당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범죄적 행위가 드러나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곳이 국가정보원과 검찰이다. 외교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산업통상자원부의 해외 자원개발, 교육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 등 각 부처가 과거의 것을 속속들이 다시 보고 있다.”

-민주당 적폐청산위와 정부 부처의 TF는 서로 의사소통이 있는가.

“당 적폐청산위의 목표는 제도 개선이다.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시스템과 제도를 개선하는 게 목표라고 처음부터 천명했다. 각 부처 TF와 현안과 관련된 교감은 없다. 다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제도 개선과 관련된 당정협의는 하고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적폐청산 작업은 역시 국정원에서 하는 것인가.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은 박근혜정부 첫 해에 내부고발에 따른 검찰 수사가 재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국정원에서 TF를 가동하니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취임해 광범위한 여론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명박정부가 국정원을 머리와 손발로 하는 여론조작 정치를 폈고, 쌍생아인 박근혜정부의 탄생에만 주력한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명박정부 당시를 조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됐다.”

-앞으로 시작할 적폐청산 작업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4대강 사업 아닐까. 그동안 정책감사만 했던 감사원이 공무원 비위는 없는지 비위감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누구도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게 2개 있다. 하나는 제2롯데월드다. 이는 국가안보를 버리고 한 기업의 20년 숙원 사업이자 어마어마한 이권을 한 번에 해결한 반역행위다. 555m 높이의 건물이 서면서 성남비행장의 공군기지로서 기능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두 번째는 BBK 사건이다. 검찰에서 다스의 자금 흐름만 다시 수사하면 바로 승부가 난다.”

-적폐청산은 언제, 어떤 단계에서 끝나는가.

“적폐청산의 목표는 국정농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와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 조직에서 국정농단에 부역하며 위법하고 부당한 명령에 항거하지 않았다. 불법적인 명령에 대한 공무원의 이의제기권을 제도 개선 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 수사·정보기관, 감사원 등 정부기관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국정농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검찰 제도 개혁은 중요하다. 수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적폐청산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가 장기간 계속되기 어렵다. 그러나 시스템 개선을 생각하면 문재인정부 5년 내내 적폐청산을 점검해야 할지 모른다.”

-과거 정권의 비리를 찾는 과정이 계속되면 국민은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은 국민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수사는 3∼4개월 이상 끌면 문제가 생긴다. 미래를 향한 비전과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신문의 주요 기사가 돼야 하는데 검찰 수사가 지면을 장식하면 국민적 피로감을 부르고 일부 야당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다. 문제는 어디까지, 어느 깊이로 다룰 것이냐 하는 점이다. 여론조작 사건은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발이 이뤄졌다.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BBK 사건은 검찰의 과거 부실 수사가 드러날 수 있어 쉽지 않다. 상당한 근거를 갖추고 국민적 요구가 커졌을 때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시간도 상당히 걸릴 것이다.”

-정치보복이라는 여론은 점점 커질 것이다. 곧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된다. 내년에도 이명박·박근혜정부 비리 수사에 매달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이 수사의 시간적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적폐를 청산하라는 국민적 요구는 단기간에 만들어진 열기가 아니다. 지난겨울 연인원 1700만명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이런 열망이 고도로 응축된 것이어서 쉽게 식지 않는다. 다만 어떤 수사도 상당한 시간 안에 상당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상당성이라는 관점이 있다. 이를 국민 여론과 함께 고려할 필요는 있다.”

-‘미래를 보자’ ‘안보·경제 문제가 더 화제였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적절하게 조율할 방법은 없겠는가.

“문 대통령의 성품과 정권 탄생 배경을 생각하면 ‘그만하면 됐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일상적으로 수사 가이드라인을 냈지만 문 대통령은 그런 이야기를 못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수사에도 정점이 있을 것이다. 아직은 최고치를 찍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 여론과 함께 정점을 찍을 날이 올 것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범죄를 이 잡듯 다 잡으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적폐청산도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조금 더 나라가 맑아지고,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 정도에 끝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폐청산 과정에서의 자세도 중요하다. 거부감을 주는 말과 행동은 오히려 적폐청산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좋은 지적이다. 모든 것은 다 적절한 절차가 있고 수단과 방법이 투명해야 한다. 다루는 주체들이 지혜로워야 한다. 격렬하게 반발하는 세력이 있으므로 지뢰밭을 걷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지금은 문 대통령 지지율이 매우 높다. 그러나 여론의 가변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여론을 너무 과신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연하다. 여론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조심스럽고 지혜롭게 다뤄야 한다. 다만 이 작업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믿는다. 누구를 처벌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아니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 국가경쟁력이 지난 9년 동안 뒷걸음쳤다. 그 비용을 빼면 경제는 물론이고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이 강화됐을 것이다. 회계부정 사건을 일으킨 엔론사를 미국 사법 당국이 엄하게 단죄한 뒤 미국 기업의 윤리경영과 회계상 투명경영은 전 세계의 신뢰를 받았다.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는 토대 위에서 제대로 적폐청산을 했으면 좋겠다.”

- 적폐청산의 시스템화라는 말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가.

“문재인정부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최고의 시스템은 견제와 균형이다. 권한이 집중되면 남용으로 이어진다. 여러 기관에 권한을 분산하고 서로 견제토록 하는 시스템으로 균형을 잡으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청와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부처는 따르기만 해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 박범계 위원장은 누구

2016년 20대 총선 대전 서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재선 의원이다.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나 1980년 중퇴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1985년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며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서울지법 남부지원, 전주지법, 대전지법 판사로 일하다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법무특보로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청와대 민정비서관, 법무비서관을 역임했다. 18대 총선에는 낙선했지만 19대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더불어민주당 제1정조위원장 및 최고위원을 맡는 등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이 터지자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 박근혜정부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당시에는 민주당 진상조사단장이었으며 지난 8월부터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았다.

만난 사람=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