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김병수] 굿바이 미뤄두기 기사의 사진
잭슨 폴록 ‘벽화’
무슨 일이든 시작이 제일 어렵다. 나도 마찬가지다. 원고 마감이 다가오는 데 첫 문장도 쓰지 않은 채 인터넷 신문 기사만 들춰 보고 있기 일쑤다. 시작이라는 고비를 넘기기 위해 내가 활용하는 방법은 루틴(routine)이다. 루틴이란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반복하는 행동을 말한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영국 가수 아델의 음반 ‘19’를 틀어놓고 있으면 ‘이제 슬슬 써 볼까’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스트레스를 풀고 체중 관리를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씩 10㎞를 뛰는데, 이것도 처음에는 시작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무미건조하게 달리는 게 재미도 없는 데다 뛰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시작이 어려웠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록그룹 멈포드 앤드 선즈의 노래 ‘Tompkins Square Park’를 듣고 있으면 쿵쾅쿵쾅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억지로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음악이나 들어보자”라며 편하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루틴이 꼭 노래일 필요는 없다. 글쓰기 전에 연필을 깎는 사람도 있고, 유튜브로 마라톤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뛰고 싶은 욕구가 솟아난다는 이도 있다.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어두고 실천하면 시작하기 한결 수월해진다. 자꾸 미루고, 제때 시작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르다고 탓해서는 안 된다. 결과에 대한 부담이 크거나 완벽한 일처리가 요구되는 프로젝트일수록 시작하기 어려운 법이다. 불안감이 커지면 회피 욕구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완벽에 대한 강박이 미루는 습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완벽하게 준비돼야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정보만 자꾸 수집하고 시작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이다. ‘병적인 꾸물거림’ 이면에는 완벽주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굿바이 게으름’ 같은 자기계발서가 시키는 대로도 해봤고, 압박감도 나름 잘 처리하는데도 미루는 습관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이때는 ‘자아 에너지가 고갈된 것은 아닌가’ 하고 점검해봐야 한다.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의욕이 바닥 난 것일 수 있다. 꾸물거림의 또 다른 흔한 원인이 바로 소진증후군인데, 이때는 충분히 쉬어주면 자연히 해결된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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