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창욱] 나를 깨운 소리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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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우연이나 착각인지, 아니면 무슨 초자연 현상이라도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을 몇 번은 겪는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이 그런 일이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을 나의 방으로 초대한다. 언젠가 이 지면에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디 아더스), 파리 몇 마리를 잡은 이야기(사투)를 했던 그 집, 그 방이다. 나는 조금 전 눈을 떴다. 좁고 두툼한 이불 위에서. 이불이 한가운데 놓인 네댓 평짜리 방은 컴컴하다. 불을 끄고 누운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까 나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검은 늪 같은 무의식의 세계로 빨려들듯 가라앉았다. 촛불 꺼지듯 음악소리가 소멸하고 어둠에 대한 인식마저 사라졌을 때 끌려나오듯 깨어난 것이다.

나를 깨운 게 무엇인지 궁금해 하기도 전에, 무의식의 세계에서 이 방으로 의식이 돌아왔음을 깨달음과 거의 동시에(그러니까 눈꺼풀도 들어올리기 전에) 귓가에 척- 척-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을까.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척 척 척. 북한 병사의 구스 스텝처럼 각 잡히고 일관된 소리가 반복적으로, 마치 내 머릿속에 울리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린다. 귀를 기울일수록 척척 소리가 커진다.

거실 텔레비전 소리일까. 아니다. 나는 방에 들어오기 전 텔레비전을 껐다. 무엇보다 소리는 방문으로 가로막힌 거실이 아니라 이곳, 내 방 안에 있다. 프로 요리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차근차근 고기를 다지듯이, 척척 소리는 내가 마시고 뱉는 공기에 프로패셔널하게 칼집을 내고 있다. 조금도 서두를 생각은 없어, 내가 뭔지 잘 맞춰 봐 라듯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시곗바늘 소리다. 초침이 전진하는 소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재깍재깍. 똑딱똑딱. 척척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내 방에 시계가 있던가.

생각이 곧바로 시계에 미치지 못한 건 내 방에 시계가 있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동생이 선물해준 카시오 손목시계와 내가 직접 산 우드 재질 손목시계가 있다. 카시오 손목시계는 한동안 차고 다니다가 지금은 상자에 넣어 보관 중이다. 상자에 갇힌 시계에서 이렇게 선명한 기계음이 날리는 없다. 그리고 카시오 시계는 전자시계다. 한편 우드 손목시계는 시침 분침 초침이 다 있는 기계식 시계다. 하지만 그 작은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이렇게 크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척척 소리는 이제 온 집 안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러다 벽마다 금이 가서 천장이 나를 덮치고 결국에는 집이 무너져버리는 건 아닐까. 그제야 내 방에 벽시계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그 시계는 오랫동안 움직인 적이 없다. 수개월, 아니 몇 년은 됐다. 마지막으로 소리를 내며 움직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는 분명히 그쪽에서 나고 있다. 척 척 척 척. 더 또렷해진다. 반색하며 “그래 나야 나” 소리치듯이. 나는 비로소 몸을 일으켜 반쯤 앉은 자세로 팔을 뻗어 방에 불을 켠다. 형광등 불빛이 어둠을 밀어낸다. 벽시계가 걸린 책상 벽면을 올려다본다. 잠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볼륨을 낮춘 것처럼. 시계의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일어나 가까이 다가간다. 적갈색 나무 벽시계는 영국 런던의 대형 시계탑 빅벤을 윗부분만 잘라낸 듯이 생겼다. 바늘이 움직이고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초침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다.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가리키는 시간은 6시39분. 오전인지 오후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실제 시간은 0시32분이다. 시계는 어느 날 6시30분쯤에 멈췄었다. 달력 기능이 없어 날짜는 확인 불가. 어쨌든 멈췄다가 활동을 재개한 건 분명하다. 시간이 아주 큰 폭으로 맞지 않으니까. 그런데 건전지가 들어 있었나. 벽에서 시계를 떼어내 먼지가 앉은 몸통을 열고 건전지를 확인한다. AA형 듀라셀 건전지 하나가 꽂혀 있다. 건전지에 인쇄된 ‘사용권장기한’은 2015년 10월. 유통기한이 2년이나 지났다.

벽시계는 과거에 사귀던 사람이 외국으로 나갈 때 짐을 처분하며 주고 간 것이다. 그가 돌아오면 줘야지 하고 보관했던 물건이기도 하다. 시계는 벽에 걸린 채 잊혀졌다. 시계 주인과는 이별했다. 시계는 그 후에 멈췄을까. 나는 최근 다시 실연 가까운 것을 겪었다. 실연은 그 사태 전후의 시간성을 가른다. 실연 이후의 세상에서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한 차례 이별을 지켜본 벽시계는 “이봐 그래도 이렇게 시간은 다시 가는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이번 일은 ‘필연 같은 우연’이라고 해두자.

강창욱 국제부 기자 kcw@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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