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북한의 오판인가, 미국의 오판인가 기사의 사진
한반도가 6·25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음은 분명하다. 한데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까를 둘러싸고 우파와 좌파의 시각은 확연히 갈린다. 필자도 ‘썰전’에서 이 주제만 나오면 생각이 평행선을 달린다. 이런 논쟁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 ‘프레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프레임은 인식의 틀이다. 그것은 생각의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다. 사람들은 프레임 없이 판단하지 못한다. 누구나 일종의 색안경을 쓰고 있는 셈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이 왕 앞에서 벌이는 ‘썰전’도 결국 프레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분을 잃는 굴욕’보다 ‘명예로운 죽음’이 낫다는 김상헌과 ‘나라를 잃는 것’보다는 ‘굴욕을 감수하는 편’이 현실적 선택이라는 최명길의 대립은 프레임의 근본적 차이이기 때문에 화해하기 어렵다.

안보에 관한 좌와 우의 프레임 차이는 북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보 좌파는 북한의 핵무기를 반대하지만, 내심 결정적 위협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 프레임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더라도 그것을 한국을 향해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 오히려 한국이 ‘햇볕정책 2.0’으로 북한을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미국이 지나친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한반도에 전쟁 위험만 늘리는 일이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압박보다는 ‘전쟁불가’라는 규범적 메시지에 매달린다. 북한의 오판보다는 미국의 오판을 더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보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는 사태를 ‘공포’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핵무기를 방어용으로만 간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무기 체계 완성은 한국이 핵 인질로 ‘강요 외교’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북한이 원하는 대로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그것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로 연결되고, 한국은 대남 적화통일 전략에 그대로 노출됨을 우려한다. 따라서 그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를 위해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고, ‘궤멸의 공포감’을 극대화해야 그나마 북한의 오판을 막을 마지막 희망이 있다고 본다.

단적으로 좌파는 북한을 ‘선의를 교환할 수 있는 협력국’으로 대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에 우파는 현재의 북한을 ‘선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적국’으로 본다. 현 국면에서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행위자인 미국은 당연히 후자의 입장에 서 있다. 미국 시민과 영토를 위협하는 핵무기를 위험한 적성국이 갖는 사태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그것이야말로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반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의 재선도 물 건너간다.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들과 자신의 대북 정책이 같지 않음을 명확히 선언했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으면 그것은 곧 북한 정권 붕괴를 뜻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명확한 메시지다. 북한의 전략적 사고, 즉 미국은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은 못할 것이니 결국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의도를 미국이 탄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북한이 오판하면 해상 봉쇄, 참수작전, 선제 또는 예방 타격 등 군사적 옵션을 꺼내들겠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북한이 끝까지 갈 때 속전속결의 승산과 피해의 최소화 가능성을 고려한 군사적 옵션의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미군의 동향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군사적 수단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배제한 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트럼프 정부는 판단한다. 물론 군사적 행동 직전까지 미국은 북한이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안을 갖고 협상에 나오도록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마지막 성냥불을 댕기기 전에 오판을 멈추라는 것이다.

요컨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으려면 미국의 오판을 걱정하기 전에 북한의 오판을 막는 데 주력하는 것이 순리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의미심장하다. 이 외교의 결과가 향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그는 분명 북한에 대해 단호한 결기를 보일 것이다. 이에 대한 한국의 호응도 기대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해 어떤 적극성을 보이느냐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결정지을 것이다.

만일 ‘북한의 오판’보다 ‘미국의 오판’을 걱정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지금 절실한 ‘찰떡 같은 한·미 공조’에도 암운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미국을 가로막는 방식으로는 북한의 오판을 막을 수 없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 그것이 확고한 한·미동맹 입장을 취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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