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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는 시대다] 끝내 오지 않은 영자의 ‘전성시대’

④ 김호선 감독 ‘영자의 전성시대’(1975)

[명화는 시대다] 끝내 오지 않은 영자의 ‘전성시대’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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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티스 영화’라는 어색한 어감의 말로 통칭되던 장르가 있다. 주로 1970년대 한국 멜로영화들에서 시작된 이 범주는 산업자본주의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활발히 유입되던 시기의 산물이다. 그 인구의 상당수는 별다른 물적 토대도 없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도시로 이주한 젊은 여자들이었다.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거나 그 막다른 길에서 성(性)산업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 이들이 ‘미워도 다시한번’(1968) 류의 최루성 멜로물을 대체한 ‘호스티스 영화’ 속 새로운 주인공이다.

정치적 탄압을 지속하면서도 향락산업을 부추기던 유신체제의 이중성은 대중문화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시선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매매춘이라는 소재와 선정적인 장면들은 엄격한 검열대상인 동시에 매혹적인 소비 상품이기도 했다. 여자배우들의 스캔들이나 관능적 이미지를 앞세운 성인주간지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렸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인기로 관객을 잃은 영화는 방송으로는 불가능한 자극적인 이야기로 부흥을 모색했다. ‘산업의 역군’ ‘희생적인 누이’ 따위의 말로 빈곤한 여성의 삶을 억압하고 여성의 성을 착취하던 사회구조가 ‘호스티스 영화’의 탄생 배경인 셈이다. 하지만 이 장르의 명명자체와 소비패턴에 여성의 성을 대상화하는 태도가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70년대 후반에 붐을 이룬 ‘호스티스 영화’들이 여성의 불행을 전시하며 성애 장면에만 치중해가던 경향은 이를 대변한다.

70년대,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과 함께 ‘호스티스 영화’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이 바로 ‘영자의 전성시대’(1975)다. 작가 조선작이 1973년 ‘세대’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김승옥이 각색한 이 영화는 최근까지도 영화 안에서 종종 반복되는 여성 수난사의 원조 격이라 할만하다. 현재의 관점에서 ‘영자’의 연대기는 당대 하층계급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사례들을 한 인물에게 압축해 놓은 듯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영자는 ‘별들의 고향’의 ‘경아’에 이어 그해 최다 관객이 호응한 캐릭터였다.

영자의 삶은 극적인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영자(염복순)는 부잣집의 가정부로 일하며 시골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낸다. 연애할 여유도 없이 일만 하던 그녀는 주인집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쫓겨난다. 봉제공장에 취직을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손에 쥐는 돈은 턱없이 적다. 버스차장이 되어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잃는다. 보험금을 몽땅 가족들에게 보낸 후,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마저 성공하지 못한다. 결국 불구의 몸으로 성을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데, 가정부 시절 자신을 연모하던 착한 창수(송재호)와 재회한다. 그녀는 이 불행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무색하다. 영자의 삶이 한 국면에서 다음 국면으로 넘어갈 때마다 그 이행은 그녀의 능동적인 선택과 무관해 보이기 때문이다. 초라한 밑바닥의 자리에서 그보다 더 추락한 밑바닥의 도래를 무력하게 목도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는 영자가 맞닥뜨린 삶의 마디마디를 그렇게 편집해 두었다. 이를테면 봉제공장에서 첫 월급을 탄 영자가 방에 돌아와 봉투를 털자, 고작 동전 몇 개가 나온다. 빚을 갚고 남은 돈이다. 좁은 방을 뒹굴며 이 어이없는 상황에 깔깔거리던 영자의 표정이 일순간 차갑게 굳는다.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어색한 화장을 하고 유흥업소에 앉아 있다. 또 다른 순간도 있다. 불구가 된 몸으로 자포자기한 영자가 여인숙으로 돌아와 낯선 남자의 방에 들어간다. 그녀는 초췌하고 두려운 얼굴로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영자는 확연히 달라진 표정과 능숙한 태도로 곁에 누운 남자를 희롱하는 중이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의 전환은 장면들 사이에 생략된 영자의 시간을 오히려 아프게 상기시킨다.

영자를 이렇게 몰고 간 70년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 새삼 정색하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영화 내내 이 여인의 훼손된 육체적 이미지가 자아내는 날카로운 서글픔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고 싶다. 장애를 입고 보험수당을 받은 영자가 고향에 편지를 부치는 장면에서야 비로소 가족들의 모습이 잠시 등장한다. 영화는 특이하게도 가족들의 모습을 흑백 화면으로 담는다. 그들은 영자가 보낸 편지와 돈을 받고 기뻐하는 중이고 그 위로 편지의 내용을 읽는 영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때 영자가 속한 도시의 환락가와 가족들이 사는 시골은 동시대 풍경처럼 보이지 않는다. 팔 한쪽을 잃고 생의 벼랑 끝에 선 영자와 그 대가로 지불된 돈을 들고 순진하게 좋아하는 가족들의 내적 거리는 냉정하고 멀게 느껴진다. 영화 안에서 영자의 부서진 육체는 도시와 농촌의 간극, 자본의 환상과 현실의 빈곤 사이를 가까스로 메우며 그 세계를 힘겹게 지탱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겁이 나요.” 영자는 자신의 삶을 멈춰 세울 수도 없고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이 영화에는 한 방향으로 철길 위를 무심히 달리는 기차가 종종 나오는데, 기차를 응시하는 영자의 얼굴은 자주 클로즈업 되곤 한다. 그 표정의 의미는 잘 읽히지 않는다. 그 기차 장면에 죽음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정도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당대의 아이콘으로서 ‘영자’는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이 여인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에는 동시대적 공감과 연민뿐만이 아니라, 관음증적 욕망, 기대와 좌절, 혐오와 죄의식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영자의 전성시대’의 한 축이 영자라면 다른 한 축은 창수다. 그 역시 영자처럼 당대 하층계급 도시 빈민의 전형이라고 할만하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와 공중목욕탕의 세신사로 일하며 보일러실 지하에 거주하지만, 언젠가 양복점을 열고 가정을 꾸릴 꿈을 꾸고 있다. 그간 창수는 타락한 여자에 대한 순정을 꺾지 않는 희생적인 남성상 정도로만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창수는 영자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또 다른 남자 인물들, 이를테면 보일러공 김씨 아저씨(최불암)나 훗날 영자의 남편이 되는 사내(이순재)와 함께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 창수와 보일러실에서 동고동락하는 김씨 아저씨는 영자를 향한 창수의 희생이 못마땅하다. 급기야 그는 영자를 창수에게서 떠나게 만든다. “네 목숨이 네 것인 줄 알면 오산이야. 세상을 위해 쓰라는 거야. 늙어서 내 꼴 나고 싶으면 멋대로 하라고!” 창수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은 다소 뜬금없고 과해 보인다. 영화에서 김씨는 창수로 대변되는 아들세대가 자신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며 무력하게 실패를 곱씹는 유사 아버지의 자리에 놓인다.

그렇다면 영자의 남편은 어떤가. 그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 단 한 차례 등장한다. 시간이 흘러 양복점 사장이 된 창수는 영자의 소식을 듣는다. 영자 곁에는 갓난아기와 다리를 저는 남편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순간이 등장한다. 영자를 만난 후, 돌아서는 창수를 향해 영자의 남편이 아는 체를 하며 자주 놀러오라고 말한다. 그들은 흡사 재회한 형제처럼 보일 정도다. 둘은 각자의 오토바이에 올라 나란히 도로를 질주하고 그 위로 이들을 바라보는 듯한 영자의 얼굴이 겹쳐진다. 이것은 시대의 희생양들에게 감독이 보내는 위로의 장면일까. 하지만 이 마지막을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기는 망설여진다. 영자의 흐릿한 표정에 담긴 의미는 여전히 알기 어렵다. 텅 빈 도로를 달리는 두 남자의 뒷모습은 괴이하게 평온하다. ‘호스티스 영화’를 주로 마무리하는 죽음의 결말도 여기엔 없다. 영화 내내 멜로의 중심에 존재하던 영자는 클로즈업된 얼굴로 혼자 남고,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의 새로운 관계, 혹은 연대가 영화의 끝을 채운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와 원작 소설의 결말이 보이는 차이다. 소설에서 영자는 사창가의 불길에 휩싸여 죽는다. 소설의 화자인 남자는 그 현장에서 팔 한쪽이 없는 여자의 시체를 마주한다. 즉 소설은 잿더미에서 영자의 손상된 몸을 발견한 남자의 시선으로, 영화는 두 남자를 향한 영자의 응시로 서사를 끝낸다. 한 여인의 연대기로서 영자를 끝내 살려두고 무언의 응시를 남겨둔 영화 쪽이 더 진취적이고 능동적이라고 말해야 할지 확답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이런 표현은 가능할 것 같다. 한 시대와 한 여자를 공유하며 동질감을 나누는 남자들의 연대기와 여전히 홀로 고립된 여자의 연대기가 마주보고 있다. 아니, 어긋나고 있다.

제목과는 반대로 정작 이 영화에서 영자의 전성시대는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기 때문일까. ‘영자의 전성시대’의 흥행에 힘입어 같은 해, 영화의 속편이 서둘러 제작되었다. 원작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개봉해서 결국 표절판정을 받은 속편의 제목은 무려 ‘창수의 전성시대’(김사겸)다.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창수의 전성시대’라는 말은 ‘영자의 전성시대’의 엔딩에서 본 두 남자의 뒷모습과 희한한 연속성을 지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창수의 전성시대’는 흥행에 실패했다. 1982년과 1987년, ‘영자의 전성시대’는 ‘속 영자의 전성시대’와 ‘영자의 전성시대 87’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깨어나지만, 역시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조금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겠으나 영자의 전성시대는 결국 오지 못한 채, 1975년의 그 자리, 영자의 모호한 마지막 얼굴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김호선, 1970년대 청년문화 대표주자… ‘겨울여자’로 각광

1941년 함경도에서 태어난 김호선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다 백호빈 유현목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며(‘영자의 전성시대’의 원작을 쓴 작가 조선작 또한 소설가가 되기 전 유현목의 조감독으로 일한 적이 있다) 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1974년 ‘환녀’로 데뷔한 그는 1년 뒤, 그해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자의 전성시대’로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 ‘별들의 고향’(1974)의 이장호, ‘바보들의 행진’(1975)의 하길종 등과 함께 그는 1970년대 청년문화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당시 이들은 감독 이원세 홍파, 평론가 변인식과 ‘영상시대’라는 동인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영화운동을 고민하고 영화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1977년, 김호선은 ‘호스티스 영화’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겨울여자’를 선보이며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조해일의 원작 소설을 김승옥이 각색한 이 영화에서 당시 신인이었던 장미희는 여대생 이화 역으로 분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겨울여자’는 ‘영자의 전성시대’의 스코어를 갱신하며 58만명이라는 관객을 불러 모았고 1990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이 나올 때까지 흥행 1위의 자리를 지켰다. 그는 80∼90년대에도 ‘겨울여자’의 속편 격인 ‘겨울여자 제2부’, 배우 강리나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서울 무지개’, 윤심덕의 마지막을 그린 ‘사의 찬미’, 장정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아담이 눈뜰 때’, 멕시코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들의 이야기인 ‘애니깽’ 등을 내놓았지만 70년대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게다가 1996년 미완성 상태로 예심에 출품된 미개봉작 ‘애니깽’이 대종상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면서 감독과 영화제 모두에게 심각한 오명을 남겼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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