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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기호] 전형성을 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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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명 넘게 봤다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얼마 전 인터넷으로 다운로드해 봤다. 한 편의 영화를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극장에 가서 봤다는 건 아무래도 수상쩍은 일이지만, 독과점 논란을 넘어설 만한 가치와 의미가 분명 내재하지 않을까, 남들 따라 슬쩍 기대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택시운전사’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역시나 이야기와 인물의 ‘전형성’ 문제 때문일 터. 나는 영화를 통해서 내가 이전엔 만나보지 못했던 인물을 새롭게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또 예전엔 몰랐던 ‘광주’의 새로운 진실을 깨닫게 되리라는 바람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택시운전사’를 보는 내내 그런 것들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인물들은 내가 빤히 예상했던 대로만 움직였고, 서사는 게으르게 이어지다가 작위적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이게 뭔가. 왜 이 영화를 천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봤단 말인가. 아직도 우리 문화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이르지 못한 걸까. 컴퓨터를 끄면서 나는 역시나 영화 산업의 독과점 문제가 심각하구나, 대충 그 정도 선에서 마음의 질문을 거두었다. 오해할까봐 하는 말이지만 그건 질투는 아니었다. 영화와 소설은 엄연히 다른 장르니까. 복어가 고래를 질투하지 않는 것처럼, 소설가의 입장에서 감독이나 관객 수를 시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홍콩에서였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도움으로 홍콩 대학생들과 신문기자들을 만나러 간 자리였는데, 거 참, 분명 내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였지만, 사람들의 질문은 거의 다 택시운전사에 관한 것들로만 이어졌다. 아니, 홍콩 사람들이 택시운전사들에게 무슨 원한 같은 것을 가졌나, 여기 택시도 승차 거부나 난폭운전 같은 것을 일삼나, 왜 한국 소설가를 불러놓고 계속 택시 얘기만 하나, 영어가 짧은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왜 지금 그 영화 이야기를 홍콩 사람들이 꺼내는가? 홍콩에서 흥행은커녕 제대로 개봉조차 되지 않은 영화라고 들었는데, 왜 자꾸 그 얘기를 묻는 것인가? 나의 그런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해결되었다. 그건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홍콩 사회에 야기한 여러 정치적 질문에 대해, 우회적으로 한국 작가에게 발언해주기를 희망하는 자리였다는 걸. 말하자면 중국에서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석연치 않은 이유 때문에 5일 만에 상영 금지가 되고(‘천안문’ 사태의 영향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그로 인해 중국 본토와 미묘한 긴장 관계에 놓인 홍콩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자니 나로선 갈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택시운전사’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는데, 이를 어찌 이야기하나. 홍콩 사람들은 ‘택시운전사’에 대해서 물으면서 내게 기대한 대답이 따로 있어 보였다. 그건 아마도 정치적 검열과 표현의 자유 문제일 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영화의 전형성 운운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내가 느낀 그대로의 감상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렇게 운을 떼고 이야기하다가 이전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까지 말을 하게 되었다.

그 영화가 제작되고 촬영된 것은 한국의 이전 정부 시절이다. 예술가를 정치적 노선 차이로 인해 차별하고 검열하던, 정상적이지 못한 정권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이자 역량이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어떤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전형성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회에서 살면서 전형성을 무시하던 나의 시간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전형성은 이야기와 인물뿐 아니라 배경에도 깃든다. 나의 부끄러움은 그 배경을 인식하지 못한 데 있었다.

이기호(광주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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