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시간의 길, 땅의 기억 기사의 사진
이종민, ‘홍천, 병풍바위’. 70x180㎝(부분). 프레스코. 갤러리Artlink
자작나무숲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백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이다. 듬성듬성 심어진 자작나무 사이로 청량한 기운이 감돈다. 홍천은 자작나무숲이 장관을 이루는 아홉사리재가 유명하다. 화가는 그 유명한 절경보다는, 자작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사이좋게 어우러진 풍경에 끌려 화폭에 옮겼다. 인적 끊긴 고요한 공간에 겨울 정취가 가득하다.

계곡 저 너머에는 웅장한 바위산이 위용을 뽐낸다. 어디서 많이 본 바위산이다. 찬찬히 살펴보니 진경산수화가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에 담은 그 산이다. 화가 이종민은 홍천의 자작나무숲에 인왕산을 병치시켰다. 전혀 다른 공간이 작가에 의해 하나의 작품에서 만나며 뜻밖의 풍경이 됐다.

인왕산 기슭의 마을 옥인동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인왕의 바위들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왔다. 조부의 손을 잡고 산을 수없이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뇌리에 각인된 인왕을 작가는 홍천숲과 연결시켰다. 이를 통해 그림이란 ‘기억의 산물’이기도 함을 일깨운다. 작가가 살아낸 삶의 순간들, 즉 ‘시간’이 새로운 땅과 만나며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빚어진 것이다.

이종민은 석회와 돌가루를 나무판에 바른 후, 가마에 구워 만든 특수안료를 올려가며 작업한다. ‘건식 프레스코’ 기법인데 번들거리지 않는 회화를 구현하고 싶어서다. 돌가루가 빛에 감응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종민의 회화는 서울 안국로의 갤러리아트링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