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고승욱] 네이버가 언론기관이든 아니든 기사의 사진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현상에 관한 뉴스와 정보를 취재해 기사로 작성하고, 때로는 의견을 첨가해 대중에게 제공하는 공적 기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언론기관의 뜻이다. 네이버가 서비스하는 국어사전에도 똑같이 쓰여 있다. 이 정의를 그대로 적용하면 네이버는 언론기관이 아니라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네이버는 취재하거나 기사를 작성하지 않는다. 의견도 첨가하지 않는다. 언론기관이 작성한 기사를 받아 대중에게 제공할 뿐이다.

하지만 이는 말의 유희에 불과하다. 신문사는 신문에 들어갈 기사를 생산하고 끝내는 게 아니다. 신문을 만드는 곳이다. 취재해 기사로 작성하는 일만큼 대중에게 제공하는 기능이 중요한 이유다. 굳이 따지고 들어가면 윤전기를 돌리고 독자에게 배달하는 과정뿐 아니라 생산된 기사를 어느 면에 얼마만한 크기로 게재할지를 결정하는 게 모두 ‘대중에게 제공하는’ 기능에 포함된다.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20년 넘게 일한 전문가 10여명이 아침저녁으로 편집회의를 한다. 회의 내용은 대부분 기사의 선택과 배치다. 칼럼과 달리 팩트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유한 형식을 갖춘 기사에는 쓰는 사람의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매우 적다. 그 기사에 어떤 제목을 붙이고, 얼마만한 크기로 어디에 배치하느냐를 결정함으로써 언론은 스스로의 색깔과 지향점을 독자에게 전한다. 1980년대에 ‘땡전 뉴스’가 있었다. 방송사의 메인뉴스가 오후 9시 정각을 알리는 ‘땡’ 소리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됐다고 비꼬는 말이다. 수백명의 기자가 생산한 많은 기사 가운데 무엇을 첫 기사로 올릴지 결정하는 과정이 바로 편집권 독립의 핵심이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기준점이다.

네이버는 바로 이 일을 하고 있다. 기사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언론의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더구나 네이버의 기사 배치가 갖는 영향력은 어떤 언론사보다 크다. “네이버의 숨겨진 알고리즘에 선택받으려면 머리 풀고 칼춤이라도 춰야 하느냐”라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네이버가 언론기관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네이버는 우리나라에서 기사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 모든 콘텐츠에 순서를 매기고 어디에 배치할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언론기관이 아니라는 말이 언론에게 부과된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국정감사장에서 많은 의원이 네이버의 뉴스 서비스 중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맞는 말일까. 10년 전이라면 대안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미 포털사이트를 경유하는 뉴스 소비 방식이 굳어졌다. 이해진 창업자가 구글을 예로 들었을 때 유신 시절 애국주의 마케팅이라고 비난한 사람도 있었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닌 것이다. ‘인터넷 브라우저 첫 화면에 네이버라는 포털이 있다’는 글이 마음에 안 든다고 네이버를 빼면 ‘인터넷 브라우저 첫 화면에 포털이 있다’가 될 뿐이다. 다른 포털이 들어서면 그만이다.

네이버는 지금까지 중립성이라는 갑옷을 입고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을 막고 있었다. 늘 알고리즘에 따라 기사가 배치된다고 말한다. 편집 인력은 보조할 뿐이라는 논리다. 그 주장을 전적으로 인정하더라도 네이버가 기사를 배치함으로써 영향력을 갖는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네모난 동그라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적 중립성을 아무리 극한까지 끌어올려도 결코 중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정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마이너스 요소일 뿐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뉴스서비스에 더 많은 전문인력을 투입하는 게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아니 그보다 기사를 사람 손으로 배치하는 것이 문제가 되니 인공지능에게 맡기겠다는 공학적 발상을 버리는 것이 우선일지 모르겠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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