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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광화문에서 발견한 촛농

[청사초롱-손수호] 광화문에서 발견한 촛농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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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의 중심이다. 너비 60미터, 길이 750미터로 길쭉하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보헤미아 군주의 이름을 땄고, 그를 추앙하는 기마상이 광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사에서 빛나는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이 여기서 이뤄졌다. 1969년 소련군의 침략에 맞서며 분신한 두 젊은이를 기리는 공간도 있다. 민주와 자유의 성지인 셈이다.

이 광장을 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어떤 사람은 너무 썰렁하다고 한다. 외세에 저항해 독립을 지켜내고, 공산통치 종식을 이끌어낸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고 여긴다. 치욕과 영광의 현대사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근사한 기념물을 세워야 한다. 미래세대에게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을 위해서, 외국인에게 체코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다른 쪽은 괜찮다고 본다. 광장은 특정한 역사나 사건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든 기념하고 싶은 역사가 많겠지만 광장이 그것을 담기 시작하면 기억투쟁의 장소로 전락한다. 불필요한 갈등과 긴장을 유발한다. 교과서나 박물관이 그렇듯 세대를 넘어 면면히 이어가야 할 대상이 어느 세력 혹은 집단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고민이 우리에게도 닥쳐왔다. 지난해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퇴진행동이 1주년 사업의 하나로 기념물을 만들기로 했다.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선고일인 3월 10일에 맞춰 광장 바닥에 명판을 제작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다른 단체에서는 ‘민주주의 촛불시민혁명 기념탑’과 기념관 건립을 제안하고 있다. 서울시는 광화문에 진입하는 신호등에 촛불을 거는 아이디어까지 내놓고 있다.

이즈음 바츨라프 광장의 선택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는 세기적 사건임이 분명하다. 촛불의 힘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시민계급의 빛나는 성취다. 하벨을 탄생시킨 벨벳혁명에 견줄 만하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기념하는 일은 다른 이야기다. 넓고 깊은 여론을 들어야 한다. 정부가 종자돈을 대고 촛불 시민의 모금으로 우람한 조형물을 건립하는 프로세스는 식상하고 진부하다.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조급증이다. 내년 3월까지면 겨우 5개월이 남는데, 이 기간에 무언가 해치우려 접근하면 실책이요 낭패다. 그래서는 ‘평화의 소녀상’ 같은 명작이 결코 나오지 않는다. 공공의 장소에 세우는 조형물은 한번 결정되면 물리기 어려우니 더욱 신중해야 한다. 건립의 주체는 또 어떤가. 지금의 논의구조라면 자기 가슴에 자기가 훈장을 다는 격이다. 이는 촛불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

공간에 대한 독점과 공유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4·19 당시 10만명 넘는 시민들이 세종로 일대를 메웠다. 시청 앞 광장도 마찬가지다. 1987년에 6월항쟁의 드라마가 펼쳐진 곳이로되 아무런 기념물이 없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의 발로다. 어찌 보면 광장 자체가 기념물이기도 하다. 그 서늘한 공간을 바라보면 권력자의 간담이 서늘해진다. 광장은 비어 있을 때 존재가치가 더욱 뚜렷해진다.

혹여 아쉬움이 남는다면 촛농의 활용을 제안한다. 지금도 세종대왕상을 중심으로 이순신장군상까지 촛농의 흔적이 지도처럼 뚜렷이 발견된다. 한때 촛농을 지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있었지만 갈아내지 않고는 잘 지워지지 않는 속성이 있다. 작년 겨울, 강물 같은 촛불에서 흘러내린 촛농은 광장의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거기에 1700만 시민의 외침과 염원, 열정이 담겨 있다. 촛불혁명의 가장 강력한 상징물이다. 시민들은 오늘도 촛농을 무심히 밟고 지나간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 (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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