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동훈] 연말정산 대란 데자뷔 기사의 사진
첫 단추를 잘못 꿴 정책이 국민들에게 어떤 손실을 끼치는지 수도 없이 봐 왔다. 가까운 예로 박근혜정부 시절 연말정산 대란이 떠오른다. 정부는 2013년 연말정산 정책을 바꾸는 세법 개정안을 내밀었다. 명분은 그럴싸했다. 매월 원천징수 때 세금을 덜 내고 이듬해 2월 연말정산 때 적게 환급받기로 하자는 것인데, 당장 세금을 적게 내면 가처분소득이 증가해 소비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겨냥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고 고소득 근로자로부터 세금을 많이 떼면 된다는 논리였다. 이에 커지는 세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유리지갑 월급쟁이만 겨냥하고 재벌과 전문직 자영업자 등 부자들의 감세를 철회하지 않으려는 꼼수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벌 감세 프레임을 고수한 정부와 여당은 이를 관철시켰다. 대신 세금이 늘어나는 대상을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 이상으로 완화하고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강화했다.

2015년 2월 연말정산 뚜껑을 열자 세액공제가 중산·서민층의 ‘등골 브레이커’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연봉 5500만원이 안 되는 근로자 중 세 부담이 늘어난 사람이 전체 근로소득자의 15%인 205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 5500만∼7000만원인 사람도 수십만원씩 세 부담이 늘어났다. 부양가족이 없는 독신자들은 그야말로 세금폭탄에 비명을 질렀다.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 듯’ 자녀양육비 지원, 중·저소득층 노후소득 보장 지원 강화 등 보완대책을 내놨지만 이제는 ‘13월의 보너스’라는 연말정산을 기대하는 근로자는 별로 없다. 연말정산 대란은 책상머리에서 숫자만 가지고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사칙연산 놀음만 해대는 ‘탁상정책’의 결과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런데 요즘 정부가 밀어붙이는 종교인 과세 준비상황을 보면 데자뷔(기시감)가 몰려온다. 3∼4년이 지난 지금 탁상행정에 소통부재까지 겹친 게 아닌가 우려가 앞선다.

정부는 다른 근로소득자들과의 형평성을 따지며 종교인들만, 특히 그중에서 기독교인들만 유난히 종교인 과세를 회피하려 든다는 논리로 토끼몰이 하듯 여론을 몰아가는 인상이다. 과세에는 찬성하지만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기독교계 하소연은 철저히 왜곡된 채 범죄집단처럼 취급된다. 모 실무자는 관련 유예 법안을 심의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소속 의원 사무실을 돌며 자신이 기독교인임에도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데 이에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설득작업까지 벌인다고 한다.

지난달 26일 불교계 종단 토론회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보면 불교계 역시 정부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과세 연기 요청을 해오고 있다는 발언까지 등장하는데도 이런 정황들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는 듯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7대 종단 대표 면담을 했지만 내년 과세를 위한 수순 밟기 행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교회와 종교 간 협력을 위한 특별위원회 관계자가 정부의 한 관계자와 한 통화내용은 정부의 과세 준비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최근 종교계와의 토론회 예상질문을 준비하면서 목회활동비를 교회 어디에서 결정하는지, 얼마나 책정하는지 등 지극히 기초적인 질문을 해왔다고 한다. 지난 9월 정부가 7대 종단에 보낸 세부 과세기준안에 기독교의 30여개 과세항목에 목회활동비를 포함시켜 놓고도 내년 시행 두 달도 안 남은 시점에 목회활동비 성격을 조사하는 것은 기초적인 준비조차 안 돼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심지어 당회와 공동의회가 뭔지, 재정위원회는 누가 구성하는지 등 교회 조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듯했다. 정부가 세부 과세기준안을 어떤 근거를 가지고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정부는 14일 종교계와의 토론회를 시작으로 허심탄회하게 준비상황을 공개하고 종교계와 협력해 과세 미비점을 보완하기를 바란다.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야 연말정산 대란 재현을 막을 것 아닌가.

이동훈 종교국 부국장 dh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