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남한산성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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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008년 겨울. 수습기자 시험을 치러 가는 가방 속에 김훈의 ‘남한산성’이 있었다. 시험 범위랄 것도 없이 세상만사를 묻는 기자 시험, 좋아하는 소설이나 읽을 심산이었다. 지하철에서 아무렇게나 펼친 데가 하필 처절한 비극이었다. 군병의 깔개를 빼앗아 말을 먹이고, 굶어죽은 말을 삶아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이 얼어 죽고…. “예판의 말은 인의로서 합당하오, 허나 대감은 인의를 삶아 주린 말을 먹이려오?” 합당함을 넘어 현실에 울림 있는 논술을 쓰고 나오자고 큰 꿈을 꿨다.

운 좋게 취직해 선배들 앞에 서서는 ‘남한산성’을 좋아한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전쟁 속에도 따뜻한 밥의 정서가 흐르는데, 나도 이젠 밥벌이를 한다고 떠들었다. 유독 말이 없던 한 선배가 “그 밥 이야기, 난 좀 지겹던데”라며 고개를 들었다. 기자정신 이전에 밥을 운운하는 놈이 예쁠 리 없었을 것이다. 우물쭈물하니 다른 선배가 “다 됐고, 외우는 문장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밥 얘길 꺼내둔 터라 ‘국은 간이 엷어서 뒷맛이 멀었다’는 문장을 댔다. 선배들이 “너는 대학생 물을 빨리 빼라”고 했다.

그때 내가 말해야 했을 모범답안은 아마 청병의 대열을 목도한 외눈박이 땅꾼의 진술 장면이었을 것이다. 기자생활이란 보고 들은 것을 보고 들은 대로 아뢰는 것이었다. “청천강이 얼었느냐”고 물으면 “장계에는 아뢰어 있지 않더라”고 정직하게 대답하는 게 정답이었다. 선배들은 보고가 사실인지 생각인지, 들었다면 풍문인지 누구의 말인지 거듭 물었다. 그 물음을 통과해야 겨우 몇 줄을 썼다. 대학생 물을 빼란 소리가 뭔지 알 듯도 했다. 전쟁 속에도 밥이 있던 게 아니라 밥벌이가 곧 전쟁이었다.

산성 오르는 맘으로 썼건만 정신 차려보면 성곽 주변만 맴돈 구문이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터덜터덜 돌아가는 나날이 계속되다가, 드물게는 누군가가 서날쇠처럼 은밀히 찾아와 뭔가 적힌 문서를 주고 갔다. 그물이 삼천 코면 걸릴 날이 있다며 자만했지만 알아보면 청나라에 붙은 역관처럼 원한 품은 사람이었다. 함부로 적은 신문기사가 몇 장의 고소장으로 돌아왔다. 성의 안과 밖 풍경이 다른 이치를 비싼 수업료로 배웠다.

말을 들어야 할 이들을 만나지 못할 때면 폭탄주의 뒷맛이 썼다. “너희가 웅크리고 내다보지 않으니 답답하다….” 때론 남한산성의 농성을 답답해하던 청나라 장수처럼 화를 내고 싶어졌다. 실상은 엉뚱한 데 파발을 띄우곤 멍청하게 원통해한 것이었다. K스포츠재단 근처를 서성이며 최순실 측근이 사라졌다고 이죽거리던 밤이 있었다. “경제수석 지시 없이 우리가 가서 요구했다면, 대기업이 100만원이라도 주겠습니까?” 그때 그는 서울중앙지검 1018호에서 내부고발을 쏟아내고 있었다.

동네 편의점에서 빼빼로를 사들고 귀가했으니 그 밤이 정확히 1년 전이다. 공칠 줄 알았다면 일찍 들어갈 것을, 빼빼로의 주인은 불 꺼진 집에 잠들어 있었다. 운 좋게 결혼해 커진 책장에는 ‘남한산성’이 두 권이었다. 명분보다는 실리라며, 기로에 서면 최명길처럼 살자던 아내였다. 우리는 구청의 가족 독후감 공모에 ‘남한산성’을 써내 상금을 받았다. 열심히 쓰니 잘 살게 되지 않느냐며 부부가 기분 좋게 웃었었다. 그땐 결혼생활이 전쟁이란 걸 몰랐다. 모자란 가장에겐 집 문턱이 산성이었다.

서울, 2017년 겨울. 국정농단 사태의 끝자락에도 남한산성이 있었다.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바친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전 국가정보원장의 집이었다. 엘리베이터 타는 틈에 경비원이 인터폰을 했는지 현관문 밖으로 “국민일보, 국민일보 기자가 온대!”라는 남자의 고함이 새어나왔다. 초인종을 누르자 그의 부인이 문 너머에서 “원장님은 안 계신다”고 말했다. 다음날엔 “그러니까 그걸 검찰에다가 잘…” 하는 똑같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그의 부인은 “회사에 나가셨다”고만 했다.

그는 예전엔 “정치개입은 국정원을 망치는 길”이라며 인의에 합당한 말을 했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홉 번 조아리진 않아도 ‘죄송하다’ 소리는 했어야 할 것이다. 그의 경비원이 “요즘 뉴스는 한쪽 얘기만 전해 보기가 싫다”며 혀를 찼다. 성문 닫고 꼼짝하지 않는 국정원장을 보며, 이젠 호송버스가 된 어가행렬에 엎드려 법치를 저주하는 이들을 보며, 미사일이 쏟아져도 둘로 갈라져 각자의 길만 내세우는 광장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남한산성은 남한(南韓)산성의 지독한 은유였던 것을.

글=이경원 사회부 기자 neosarim@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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