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9>] 신앙은 교회 밖 사회에서도 책임을 다해야 할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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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민중의 어머니’로 불리는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 ‘교회 벽 앞에서’. 사회 속에서 교회의 자리가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 국립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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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문 : 삶과 고백에서 불신앙과 불경건이 드러나는 사람도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진노를 회중에 임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명령에 따라 ‘천국의 열쇠’를 지닌 교회는 그들의 삶이 변할 때까지 그들을 배제해야 합니다.

제83문 : ‘천국의 열쇠’란 무엇입니까.

: 복음의 선포와 교회의 권징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두 가지로, 믿는 자들에게 열리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닫힙니다.

제91문 : 선한 일은 무엇을 말합니까.

: 하나님의 법에 따라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참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이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만찬, 그리고 천국의 열쇠

성만찬은 교회에서 행해지는 중요한 종교 예식이다. 집례자들은 성만찬 예식을 거룩히 받으라고 강조한다. 삶 속에서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행했다면 성만찬에 참여하기를 단념하라는 제안도 한다. 그것은 그만큼 거룩한 예식이라는 말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성만찬의 완성이 그 형식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강조한다. 아무리 형식이 완벽하더라도 크리스천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 성만찬은 불완전하다는 말이다. 성만찬,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한다는 것은 사회에서도 그리스도처럼 순종하는, 거룩한 생활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라는 단어 속의 의미가 성만찬을 통해 삶 속에서 실현돼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교회에 주신 천국의 열쇠가 비로소 세상에서 열릴 것이다. 천국의 열쇠란, 교회가 독점한 특권을 정당화한 말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사회에서 감당할 때, 세상이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말이다. 성만찬의 완성은 천국의 열쇠와 직결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주목해야 할 ‘바르멘 선언’

한국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독일교회가 죽었다’는 멘트를 종종 들을 수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독일교회보다 수적인 면에서 우월하다는 점이 반영된, 심리적 위안의 말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1934년 독일 사회에 대비시켜 본다면 현재의 심리적 위안은 엄청난 위축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1933년 바이마르공화국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의 나치당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말끔히 지웠다. 전쟁 배상금으로 허덕이던 경제공황을 극복했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통해 독일의 건재함을 전 세계에 알렸다.

히틀러는 나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독일교회를 결집시켰다. 독일교회는 권력 주변에 몰려들었고, 독일의 기독교인들은 나치가 제시하는 신앙에 열광했다. 나치가 주장하는 예수는 독일 혈통의 아리아인 예수로 성공과 승리의 쟁취를 돕는 마법사 ‘지니’ 같은 존재였다. 순종하고 낮아지며 겸손을 지향했던 유대인 예수가 결코 아니었다. 독일인들은 이렇게 성공을 이뤄주는 예수를 간증하기에 바빴다.

나치 권력에 대항한 움직임이 있었다. 1934년 5월 29일 독일 부퍼탈(Wuppertal)에서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성경에 근거해서 나치를 배격하는 ‘바르멘 선언문’이 발표된 것이다. 바르멘 선언의 주역은 당시 세계적인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마르틴 니묄러,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등이었다. 그들이 나치에 반대한 이유는 그것이 비성경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르멘 선언문에서 성경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당시 히틀러를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로 받아들이던 나치를 반대한 것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주(主)로 고백하는 것을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곳에 있음을 거부하며, 교회가 시대와 정치에 따라 변해도 된다는 가르침을 배격한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교회의 직분은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교회 사역과 관계없는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국가는 교회를 대체할 수 없으며, 교회가 국가의 수족이 되는 것을 거부함을 명백히 선포했다.

불의한 권력에 대항한 대가는 참혹했다. 칼 바르트는 본국인 스위스로 추방됐고, 니묄러와 본회퍼는 악명 높은 수용소에 수년간 수감됐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나치에 대항하는 시(詩)를 쓴 니묄러는 극적으로 미군에 의해 구조됐다. 하지만 본회퍼 목사는 나치가 항복하기 불과 한 달 전인 1945년 4월 9일 처형됐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신학자였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사명이며,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고, 불의한 권력에 맞섰다. 신앙은 교회에서만 국한된 ‘신념 체계’가 아니라 사회에서도 ‘유지’해야 할 부르심의 소명이다. 그 실천 영역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본회퍼는 우리의 시선이 교회의 형식에 머물고, 사회적 책임에 눈감는 것을 ‘값싼 은혜’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은혜’라고 간증하는 내용들이 본회퍼의 눈에 값싸게 보이지는 않을까.

한국교회가 1934년, 독일과 같은 상황에 존재했다면

이제, 독일교회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한국교회를 1934년 독일사회로 밀어 넣어보자. 과연 우리는 ‘바르멘 선언문’에 동참했을까.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강조하는 성만찬은 종교 예식이 행해지는 교회가 아니라 천국의 열쇠가 발휘되는 사회 속이다. 하이델베르크 91문에서 말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예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회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내는 것’에 달려 있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으므로 21세기 한국교회가 1934년 독일로 간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지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 ‘밀양’에서 폭로되는 우리의 모습, 즉 거룩함을 보여야 할 사회 현실에는 눈감고, 오로지 개인의 ‘은혜’를 부르짖고 있다면 우리에게 성만찬은 그저 형식에 지날 뿐이다. 독일교회보다 교인이나 교회의 ‘숫자’는 많을지 몰라도 한국교회는 지금 그 ‘입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본회퍼와 동시대를 산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그림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자리가 있다. 그의 초기 작품 ‘교회 벽 앞에서’는 한 여인이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냉랭한 교회의 벽 앞에 앉아 있다. 그에게 교회의 벽은 차갑고 높은 장벽이다. 그는 작품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를 통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음하는 어린아이들을 감싸고 있다. 또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작품으로 전쟁에 미쳐가는 불의한 국가의 광기에 맞섰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야말로 한국교회가 성만찬을 완성해야 할 자리다. 불행하게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제시하는 ‘성만찬’의 기준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천국의 열쇠를 잃어버렸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를 몇 명 더 파송하고, 사회 속에서 교회의 점유율을 높이는 데 힘쓸 것이 아니라 케테 콜비츠가 제시하는 그 자리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 나눔과 적용을 위해서 생각해 볼 것은?

☞ 우리는 성만찬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요?

☞ 케테 콜비츠의 그림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을까요?

☞ ‘바르멘 선언’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신은 이 선언에서 어떤 도전을 받았나요?

글=박양규 목사

△서울 삼일교회 교육디렉터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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