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숨결 밴 ‘에디션 0번’… 자코메티 원본 석고상 15점 한국 온다 기사의 사진
석고상은 조각 작업과정에서 작가의 손길이 가는 마지막 단계다. 이를 토대로 청동 조각상을 캐스팅하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작가 원본이라고도 한다. 국민일보가 주최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은 자코메티의 중요한 석고상이 대거 전시돼 미술애호가들을 설레게 한다. 석고상의 갈색 칠은 조각가들이 전시할 때 비싼 청동 캐스팅을 못해 흰 석고에 칠하거나 캐스팅 과정에서 표면이 더러워져 깨끗한 보존을 위해 칠하기도 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 제공
“그래요? 허, 그래요? 그걸 어떻게?”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만든 김영원(70) 조각가는 13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거푸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했다. 스위스 태생의 조각가이자 화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에 한 번, 자코메티의 상징인 조각 작품 ‘걸어가는 사람’(1960)이 온다는 소식에 두 번, 그리고 브론즈(청동상)가 아닌 원본 석고상이 온다고 했을 때 다시 감탄사를 토했다.

국민일보가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내달 21일부터 내년 4월 1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갖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 미술계의 관심이 뜨겁다. 20세기 최고의 조각가 자코메티의 첫 한국전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숨결이 밴 석고상이 대거 한국 나들이를 한다는 점에서 ‘미술 좀 아는’ 애호가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조각 회화 드로잉 판화 등 전 장르에 걸쳐 116점을 선보인다. 이 중 조각 41점 가운데 석고 원본이 15점이나 포함돼 있다.

석고상 원본이 뭐기에? 김 조각가는 “원본이 가장 중요하다. 그 석고상을 가지고 청동상을 캐스팅한다”며 “막 만들어낸 그 순간을 보는 것처럼 작가의 손맛이 오롯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조각 작업 과정은 먼저 흙으로 형상을 빚는다. 여기에 거푸집을 만들어 석고를 붓고 굳혀서 석고상을 만든다. 석고상은 작가의 손이 닿는 마지막 단계다. 통상 흙으로 만든 형상은 없어지기 때문에 석고상은 작가의 체온과 숨결이 밴 유일무이한 원본이다. 작가 소장본(AP·Artist Piece) 혹은 ‘에디션 0번’으로 불리는 이유다. 판매용인 청동상 작업은 석고상을 토대로 제작된 틀에 주로 조수들이 청동 쇳물을 부어 여러 개(에디션)를 만든다.

조각을 전공한 미술사 연구자 이상윤씨는 “석고상은 탈고한 마지막 원고, 청동상은 인쇄한 책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청동상이 ‘간지’가 날 수는 있겠지만 석고상의 아우라를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원본 석고상을 보면 전설 같은 자코메티와 시공간을 함께하는 느낌이 들 것”이라며 “어서 전시를 보고 싶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번에 오는 석고상은 아내 아네트, 남동생 디에고, 일본인 친구 야나이하라, 프랑스인 사진작가 로타르 등 자코메티의 삶과 예술세계에서 중요했던 모델이 모두 포함돼 있다. 무엇보다 자코메티의 브랜드가 된 ‘걸어가는 사람’과 유작이 된 ‘앉아 있는 남자’(일명 로타르 좌상·1965)가 한국을 찾아 센세이셔널하다. ‘걸어가는 사람’의 석고 원본은 아시아 최초 공개다. 경매가 1100억원이 넘는 188㎝의 가늘고 긴 석고상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국에 오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로타르 좌상’은 유작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자코메티는 흙으로 조형을 빚는 과정에서 마지막 작업을 하다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석고 작업은 동생 디에고가 세상을 떠난 형의 손길을 대신한 것이다.

전시를 주관한 코바나컨텐츠 김건희 대표는 “석고는 청동보다 망가지기 쉽다. 북핵 위기 상황 때문에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의 대여 허가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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