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세욱] 힘내라 유선영 기사의 사진
지난주 국내 골프 팬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할 만한 뉴스가 이어졌다. 7일 박성현이 신인 최초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팬이 많기로 소문난 선수인데다 ‘세계 최초·최고’ 타이틀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특성 덕에 각종 골프 관련 사이트는 하루 종일 후끈했다. 이튿날에는 방한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한국 여자골프’를 극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톱4 골퍼들이 모두 한국 선수다. 축하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이 ‘한국 골프’를 국내에서 공개적으로 띄우자 “왠지 뿌듯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US 여자오픈 상위권을 휩쓴 톱4(박성현, 최혜진, 유소연, 허미정)를 치켜세운 그날, 기자의 시선은 그러나 다른 골퍼에게 쏠렸다. 8일 중국 하이난섬에서 시작된 LPGA 투어 ‘블루베이 LPGA’ 1라운드 단독 선두로 올라선 유선영(31)이었다. 유선영은 올 시즌 컷 탈락만 5차례에, 톱10에 1차례만 들 정도로 다른 한국 선수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관심이 간 것은 동갑내기 지은희가 지난달 LPGA 스윙잉 스커츠 대만 챔피언십에서 8년여 만에 우승한 뒤부터다. 당시 지은희와 유선영이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 중 최고령이라는 기사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 31세가 최고령이라니. 이때부터 투어에서 우승한 지 5년이 넘은 최고령자 유선영을 조용히 응원했다.

30대 초반은 스포츠 선수에게는 황금기다. 체력은 20대 때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경험과 세기의 완숙, 경기를 읽는 시야 등이 정점에 달하는 때다. 세계적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32세 나이에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등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더구나 골프는 나이 영향을 덜 받는 대표적 종목이다. 42세의 타이거 우즈가 이달 말 복귀하겠다고 하자 골프계가 흥분하는 것도 골프와 나이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미국과 유럽 여자골프 교류전 ‘솔하임컵’의 미국 대표팀 12명 중 절반인 6명이 30대 이상이었다. 심지어 크리스티 커는 1977년생으로 40세다. 올 시즌 LPGA 투어의 미국인 우승자 5명 중 3명이 30∼40대다.

반면, 우리나라 우승자 10명 중 30대 이상은 지은희 1명뿐이다. 한국 여자골프는 실력 못지않게 조로(早老)현상도 세계 최고 수준인 셈이다. 실제 LPGA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이 한창인 30세 전후로 조기 은퇴 의사를 피력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워낙 어릴 때부터 성적을 내기 위한 골프에 내몰리다 보니 열정이 오래 못 간다는 것이다. 올 시즌 KLPGA 4관왕인 이정은(21)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골프는 30세까지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러다보니 골프의 매력과 즐거움을 오래 간직하는 선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해외에서는 한국 여자선수들을 흔히 ‘골프 머신’으로 부른다. 기계처럼 잘 친다는 칭찬과 함께 하루 종일 스윙 연습만 하는데 대한 우려의 의미도 담겨 있다. 골프에 대한 염증은 이런 패턴 속에서 나타난다.

최고·최강의 찬사 속에 자취를 감춘 여유와 즐거움의 골프를 맏언니인 유선영이 찾아줬으면 한다. 유선영은 이번 대회에서 최종 7위에 그쳐 1라운드의 기세를 잇지 못했다. 다만 톱10에 다다른 만큼 아쉬움을 떨치고 후배들을 이끌며 장수하길 기원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라고 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유선영과 지은희를 필두로 많은 선수들이 샷 하나하나에 기뻐하며 오래 필드를 밟는다면 훗날 미국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즐길 줄 아는 노장 골퍼들이 많다”고 소개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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