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재훈 <6> 썰렁한 보건소… 마을로 찾아가니 환자 폭증

군, 약품 많이 쓰자 감사 나왔다가 표창… 위암 말기 할아버지 돌봐드리며 전도

[역경의 열매] 이재훈 <6> 썰렁한 보건소… 마을로 찾아가니 환자 폭증 기사의 사진
이재훈 선교사가 1993년 경북 예천군 호명면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시절 아내 박재연 선교사와 함께한 모습.
때는 1993년. 공중보건의로 발령받은 지역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이었다. 하루에 환자가 한두 명이면 많은 거였고 아예 없는 날도 많은 그야말로 오지였다. ‘아무리 오지라지만 이렇게 환자가 없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상해 보건소 직원들에게 물었다.

“여긴 아픈 사람이 없습니까?”

“아픈 사람이 없긴요 많지예. 아침에 나오는 차 타고 보건소 오면 저녁에 가는 차 타고 가야 하는디 힘들게 보건소 와 봤자 의사선생님이 없어 다신 안 오는 거 아닝교.”

알고 보니 그동안 이 보건소에 근무했던 의사들은 오지 않는 환자를 기다리다 지루해 옆 보건소에 가서 노는 날이 많았고, 환자들은 어렵게 보건소에 왔는데 진료를 못 받고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거다. 과거 장부를 들춰보니 환자 수 20명이 채 되지 않은 달이 부지기수였다.

환자가 보건소에 오지 않으니 우리가 환자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호명면엔 몇 개의 ‘리’ 단위 마을이 있었다. 그중 비교적 큰 규모의 마을로 환자를 보러 다녔다. 하루 한 명이 될까 말까 하던 환자 수가 이동진료를 시작하니 매달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하루는 갑자기 군에서 감사가 나왔다. “거짓말 하는 거 아니냐”며 장부를 확인하고 난리가 났다. 갑자기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에 따라 약품의 소모도 늘고 직원들의 출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군에서는 수년간 변하지 않던 곳이 갑자기 변하니까 무슨 일이 있나 궁금했던 거다. 당연히 감사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오히려 ‘모범 보건소’로 군수 표창을 받았다.

한번은 위암에 걸린 할아버지를 만났다. 조상의 음덕(陰德)을 무척 강조하시던 분이셨다. 할아버지의 딸이 당시 호명교회 집사였는데 교회 나가는 일로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며 교회를 못 가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조상님들이 할아버지를 보살펴 주시는 것 믿으세요?”

“예 믿습니다.”

“그 조상님들이 할아버지를 가장 행복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겠네요. 그렇죠?”

“예 그렇지요.”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하필 할아버지 때에 할아버지 따님이 교회에 가게 되고, 조상님들 있는 곳으로 가시기 직전에 예수 믿는 의사가 와서 할아버지를 보살펴 드리게 된 것은 할아버지를 위한 조상님들의 배려 아닐까요? 그 조상님들이 죽어서 영혼이 되어 있다 보니 죽음 후에 삶을 좀 알게 됐는데 혹시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예수 믿는 게 자손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일이 생기게 한 것은 아닐까요?”

교회 얘기라면 미간부터 찌푸리던 할아버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자신과 딸이 예수를 믿는 게 적어도 조상의 뜻을 배신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시게 된 것이다. 감사하게도 할아버지는 얼마 후 예수를 믿겠다고 했고, 당시 호명교회를 담임하던 김칠성 목사님이 댁까지 직접 찾아가 세례를 주셨다. 나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수시로 수액과 영양제 주사를 놓아드리며 위암 말기로 먹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할아버지가 사시는 동안 많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돌봐드렸다.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어느 날, 한 남자가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 찾아왔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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