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종교인 과세 논란의 교훈 기사의 사진
칼럼을 쓰면서 많이 다룬 글감의 하나가 종교인 과세였다. 2012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불쑥 끄집어내 이슈가 된 이후 종교인 과세 법안이 통과되거나 시행이 유예되는 등 변곡점이 생길 때면 수차례 글을 썼다. 취재기자 시절 기재부와 국세청 등 세금을 다루는 부서를 오래 맡은 데다 목회자 과세가 세간의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각별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제 더 이상 종교인과 세금에 관한 내용을 쓰지 않아도 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다른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개신교계가 종교인 과세 내년 1월 실시를 받아들이겠다는 분위기인 데다 정부 역시 한국교회의 고민을 어느 정도 나누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3, 14일 이틀간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장과 기관 대표자들이 기재부와 국세청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런 기류가 확인됐다. 물론 세무조사라거나 목회자와 교회의 회계분리 등 교회가 걱정하는 사안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마당에 양측을 향한 주문의 글은 췌언에 불과할 것이다.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종교인에게도 갑종근로소득세를 걷겠다”고 천명한 지 정확히 50년 만에 종교인 과세가 도입된다. 지난 몇 년간 한국교회는 이 문제 때문에 참 힘들었다. 종교인 납세를 지지하는 국민여론은 늘 70∼80%대를 웃돌았다. 국민개세주의라는 당위론 앞에 성직의 특수성을 주장하는 교회는 무차별적으로 난타 당했다. 교회가 마치 탈세를 옹호하는 듯한 전혀 근거 없는 막말과 비난이 쏟아졌다. 단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교회의 일탈은 비판적 목소리에 힘을 더 실었다.

돌이켜 보면 안타까운 장면이 많다. 교회가 좀 더 일찍 전략적이고 실제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종교인 과세가 사회적 의제로 부각될 당시 교회의 주류적 사고는 ‘무관심’과 ‘반대’였다. 이런 분위기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즉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종교인 과세에 무슨 문제가 있으며, 교회는 어떤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식의 내용을 정교하게 알리지 못했다. 대체로 변화에 둔감했으며, 간혹 제기되는 주장은 호소력이 적었다. 교단 간 입장 차이로 한국교회가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리멸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교회가 펼치는 천문학적 규모의 대사회적 나눔이라든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주요 교회 목회자들의 자진 납세 등의 팩트는 공명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처음부터 교회가 얻을 것과 양보할 것을 구획하고 치밀하게 대응했더라면 여론의 매를 덜 맞았을 것이고, 과세당국으로부터 보다 실효적인 양보를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종교인 과세 논란에서 교훈을 얻어야겠다. 교회의 기능과 목회자의 역할이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교회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더 유연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신학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놀던 마당에 떨어진 폭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성경 비평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확립했다.

한국교회는 ‘독단’의 멍에에서 벗어나야겠다. 내가 접한 한국교회에 대한 최악의 혹평은 ‘타자의 악마화’였다.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욕설에 가까운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뼈아픈 지적이란 생각이다. 교회라는 공고한 성안에서 다른 입장이나 관점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실태를 꼬집은 날선 비유다. 교회입장에서 종교인 과세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돌아가거나 피해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받아들이되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그나마 교회다운 모습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