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
산재요양급여 지급해야”
원심 깨고 사건 파기환송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간 백혈병과 반도체 공장 업무 간 관련성이 인정된 사례는 있었지만 뇌종양은 처음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를 지원해온 시민단체 반올림은 “산재 여부를 다투는 사건에서 최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고 이윤정(여)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전향적으로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 산재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3년까지 6년2개월간 온양사업장 반도체 조립라인에서 고온테스트 공정 일을 했다. 반도체 칩에 고온의 충격을 가해 불량품을 선별하는 게 이씨의 일이었다. 일부 반도체 칩은 충격 시 합선이 발생해 소켓에 눌러붙었다. 그럴 때면 고무가 타는 역한 냄새가 났고 노동자들이 ‘검댕’이라 부르는 이물질이 생겼다. 테스트가 끝나면 기계의 내부 온도를 섭씨 50도까지 떨어뜨린 뒤 문을 여는 게 원칙이었지만 바빠서 생략할 때가 많았다.

2003년 퇴사한 이씨는 2010년 5월 뇌종양(교모세포종)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다가 거절당하자 2011년 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5월 이씨가 32세를 일기로 사망하면서 유족이 소송을 이어갔다.

이씨의 사망 이전부터 반도체사업장의 위험성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2009년부터 서울대 산학협력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의 유해요인 조사가 잇따랐다. 벤젠 등 다수의 유해물질이 검출됐지만 허용 기준치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씨가 근무하던 때부터 여러 해가 지나 이뤄진 역학조사였고 삼성전자가 영업비밀로 관리하는 성분이 많아 미확인으로 남은 부분도 일부 있었다.

사실관계는 동일했지만 하급심은 정반대 판단을 내놨다. 1심은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고, 2심은 “뇌종양이 업무로 인해 발병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1년을 고심한 대법원은 2심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발암물질의 측정 수치가 노출 기준 범위 안에 있다고 해도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장기간 노출되면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그간 회사의 업무환경 은폐로 직업병 인정이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판단이 나오고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했다.

“퇴직 후 7년이 지나 발병했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를 부정하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은 여러 하급심과 요양급여 적용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 사업장 근무로 뇌종양에 걸렸다고 제보한 이는 27명에 이른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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