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호아저씨 나라의 김우중 기사의 사진
지난 주말 21개국 정상들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 다낭에 모였다. 우리의 관심은 온통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에 쏠렸다. 사드 배치를 놓고 수교 25년 만의 최악의 갈등을 빚은 양국의 관계 회복 메시지를 기다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 직전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중국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한·베트남 역시 올해로 수교 25주년이 됐다. 그 사이 한국에 베트남은 중·미에 이은 세 번째 무역국으로 부상했고, 베트남에 한국은 최대 투자국 지위에 올라섰다. ‘어제의 적’이던 양국 관계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교역 파트너로 발전한 셈이다.

우리가 베트남에 투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로벌 생산기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임금 수준은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주요국보다 낮은 편이지만 노동력의 질은 우수하다. 우리처럼 젓가락을 쓰는 문화로 손기술이 섬세한 데다 교육 수준도 높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전통도 한국과 유사하다.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 기업들이 진출하기 어려운 조건도 우리 기업에 유리하다. 베트남 내 전통적 반중 정서가 중국 기업 진출의 진입장벽으로 존재한다.

국내 기업 안착의 결정적 플러스 요인은 베트남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의다. 베트남의 한류는 그 뿌리가 깊다. 베트남에는 국민들에게 ‘호아저씨’로 불리며 사후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호찌민 전 국가주석이다. 호찌민이 존경하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항상 ‘목민심서’를 끼고 다녔다는 호찌민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부정부패 하지 않는 관리의 모습’을 베트남 관리들도 본받아야 된다며 가르쳤다고 한다.

케이팝 스타 이전에 원조 한류 스타도 있었다. 베트남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1980년대 중반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를 도입했지만 외국 투자자가 좀체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나라에 자본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1995년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강의 기적을 수출하자”면서 베트남에 거금을 투자해 외자 유치의 물꼬를 텄다. 비록 무모한 사업 확장으로 그룹 해체의 비운을 맛보기도 했지만 베트남 정부는 은인인 김 전 회장을 경제고문으로 삼기도 했다.

베트남 인구는 1억명으로 30대 이하가 60%에 달한다. 그야말로 젊은이들의 활기찬 경제다. 반면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은 저출산에 신음하고 있다. 특히 대량 실직 사태를 초래한 외환위기를 겪은 후 한국 사회는 급격히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불안이 희망을 잠식하면서 ‘해보자’는 결기보다 ‘리스크 관리’가 미덕인 세상이 됐다. 청년층의 절반이 공무원, 공기업 직원을 희망 직업으로 꼽은 통계청의 최근 조사가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인식을 대변해주고 있다.

하지만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구직이 어려운 한국을 떠나 신흥시장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공교롭게 이들을 돕고 있는 이가 최고령 국내 벤처 사업가인 김우중 전 회장이다. 그는 한국 청년들이 베트남 등지에서 취업·창업할 수 있도록 현지어와 비즈니스 실무를 1년간 압축적으로 가르치는 글로벌YBM(Young Business Manager·청년사업가) 사업을 열정적으로 벌이고 있다.

연평균 6% 이상 성장하고, 중산층 인구가 10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베트남은 이제 생산기지를 넘어 매력적인 소비시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고 싶어 하고, 한류 붐도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회의 땅일 수는 없다. 특히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이 학대받는 뉴스가 계속 터져 나온다면 그들도 중국처럼 한순간에 등을 돌릴 수 있다.

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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