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노석철] 성급한 한·중 해빙 기대 기사의 사진
1950년대부터 70년대 중·후반까지 중국은 암흑기였다. 대약진운동 실패로 1000만명 이상이 굶어죽었고, 문화대혁명 때는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자의 오판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대약진운동 때 마오쩌둥 주석은 벼 이삭을 쪼아 먹는 참새를 ‘해로운 새’라고 규정했다. 곧바로 소탕작전이 이뤄졌고 참새가 사라지자 곤충과 해충이 확산돼 대기근을 초래했다. 또 무턱대고 철강 생산을 독려하자 멀쩡한 농기구와 냄비, 숟가락까지 용광로에 넣어 형편없는 철을 생산하기도 했다.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마오쩌둥은 2선으로 물러났지만 66년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권력에 복귀했다. 수백만명이 숙청되고 제자가 스승을 끌어내는 광기의 시대가 시작됐다. 중국은 마오쩌둥 치하에서 20년가량 암흑기를 보냈다. 문화대혁명 피해자였던 덩샤오핑이 1인 독재의 폐해를 절감하고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한 이유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황제급’ 입지를 다지자 해외 언론들은 ‘마오쩌둥 시대 회귀’를 우려했다.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집단지도체제를 깨는 등 설마 했던 일이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 주석은 외교에서도 핵심 이익과 힘의 논리를 앞세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다행히 시 주석은 주변국을 포용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한국과는 사드(THAAD) 문제를 합의했고, 베트남과는 남중국해 평화와 안정을 약속하며 영토 분쟁은 ‘봉인’하는 접근법을 택했다. 중국은 북한에도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보내 관계 개선을 타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시 주석 집권 2기에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고 있다. 시 주석이 19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선언한 ‘신형 국제 관계’ 실천을 적극 보여주려는 듯한 느낌이다.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는 280조원 경협 보따리를 풀며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신형 대국 관계’ 모양새도 연출했다.

중국이 한국에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자 마치 모든 문제가 다 풀린 것처럼 김칫국을 마시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한류스타 전지현이 광군제 모델로 등장하고,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그런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 뜻대로 금방 바뀔 것이란 기대는 금물이다. 실제 사드 합의문 발표 이후 20일가량 지났지만 아직 중국인들의 단체관광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3조원이 투입된 선양 롯데타운 건설사업은 여전히 중단돼 있다. 온갖 고초를 경험한 롯데는 중국 롯데마트 매각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삼성SDI와 LG화학 등 중국 내 한국기업이 생산한 배터리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물론 분위기는 점차 풀리겠지만 한·중 관계의 완전 복원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드에 불만을 가진 중국 사람들은 “한국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생각을 1년 이상 해왔다. 현대자동차가 ‘사지 말아야 할 브랜드’로 낙인찍혔다는 것은 통계수치가 말해준다. 이미 중국 내 한국 기업 다수가 베트남으로 이전해 베트남 한인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중 관계가 회복된다고 해도 과거의 호시절은 다시 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드 보복 형태의 갈등도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마오쩌둥처럼 절대권력을 쥔 시 주석의 말 한마디에 국제 정세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1인 권력’ 리스크다. “중국의 이익에 손해되는 쓴 열매는 삼키지 않을 것”이란 시 주석의 선언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중국이 시장을 활짝 열어준다고 해도 솔직히 우리가 경쟁에서 압도할 분야도 많지 않아 보인다. 결국 한·중 관계는 사드 문제 이전과 이후로 나눠 냉정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은 더 이상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 아니다.

베이징=노석철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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