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학수] 블라인드 채용, 그 너머 기사의 사진
금년 취업 시즌도 끝나가고 있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이번 가을도 많은 젊은이에게 그저 잔혹한 계절이었음을 잘 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 졸업식장에 나타나지 않는 젊은이가 많아지면서 엄혹한 시대를 동감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사회적 정의를 짓뭉갠 공공기관 채용비리 수사가 본격화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하고 정당한 평가에 초점을 둔 블라인드 채용이 가시화되면서 다음 기회에 대한 희망이 살아날지 모르겠다.

블라인드 채용은 기본적으로 편견과 차별에 의한 채용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권력에 가깝다는, 동문이라는, 동향이라는, 친지라는 또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직무 관련 능력, 예컨대 자격시험 성적 내지 경력 등과 무관하게 채용되는 사례가 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공정치 못한 채용을 없애면 과연 조직에 좋은 변화가 일어나는가? 혹시 조직의 성과에 차이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정의롭지 못한 관행이 계속 유지된 것은 아닌가? 아니면 조직의 성과를 크게 올리려면 블라인드 채용, 그 너머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신입사원 직무의 대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제도나 규정, 기술, 심지어 기안 포맷 및 작성까지 기존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다. 당대의 문제를 가장 예민하게 맞닥뜨리는 신입사원에게 그런 단순 답습은 아주 비생산적인 업무로 여겨질 것이다. 어디서나 신입사원이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습득하는 기본 직무는 굳이 고등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일정 기간 연마하면 누구나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블라인드 채용에서 중시하자는 직무 능력도 곧 ‘선행학습’의 단순결과에 불과할 수 있다.

전문영역의 ‘따라하기’ 직무 관행은 더 고질적이다. 예컨대 전문가가 되기 위한 다년간의 박사과정 수련은 가공할 정도로 기존 지식, 기술에 대한 모방과 답습의 고착화 과정일 수 있다. 이른바 가방끈이 길수록 개혁적, 혁명적 사고가 더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박사가 학위논문에 담긴 패러다임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것의 ‘가지다듬기’로 일생을 보낸다. 오죽하면 과학철학자 캐플런이 ‘훈련받은 무능력(trained incapacity)’을 전문가의 특징이라고 개탄하지 않았는가. 즉 “어떤 일을 하는 법을 더 많이 알수록 새로운 다른 방식으로 하기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타고난 조건을 이용한 능력(capacity)이고 다른 하나는 선천적인 조건과 무관한, 새롭게 길러질 수 있는 능력(capability)이다. 타고난 기억력을 이용해 암기의 용량을 더욱 넓히는 게 전자이고, 상상력을 키워 지속적으로 새로운 개발을 이룩하는 게 후자다. 사회 제도들은 전자 중심으로 발달했고, 후자는 거의 우연에 맡겨지든지 아니면 방치됐다. 각종 시험제도, 영재 발굴과 교육, 직무훈련 등이 모두 전자 중심이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득세하는 직군, 예를 들어 법조계, 의료계, 관료계, 과학계, 언론계, 학계 등이 전자에서 승리한 무리다. 끊임없이 과거를 추적하고 축적하지만 ‘미래설계’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떠넘기는 집단이다. 신입사원의 직무능력 테스트도 미래와 무관하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미래설계를 견인하는 세력은 엔지니어, 기업가, 예술가, 정치가 부류다. 당대의 기준에서 비윤리적인 영역까지 그들은 상상력을 동원하고, 꿈을 현실로 옮기려고 노력하며, 세상을 혁신하기 위해 미래의 가능성에 매달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동)과학은 ‘과거보기’의 기억 메커니즘에 관한 노벨상 수상자까지 배출했지만(예, Eric Kandel), ‘미래보기’의 원리 개발에는 소홀했다. 그 결과 조직의 신입사원이든 대학의 신입생이든 그간 축적한 용량이 얼마냐에 대한 점검만 철저했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미래보기 능력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방책은 방기했다. 인성, 적성 검사도 주로 전자의 점검에 초점을 두고 있지, 후자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 블라인드 채용이 편견과 차별을 배제한 공정사회 구현에 기여할지언정 문제 해결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과거보기(look backward)’ 중심의 직무능력, 인성, 적성 등에 대한 평가 못지않게 ‘미래보기(look forward)’ 능력을 육성하기 위한 창의적 기획이 마련되지 않은 블라인드 채용은 별무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후자가 잘 준비된다면 널브러지게 오픈돼 있는 게 정보인 세상에서 기존 답습의 교육기간을 대폭 줄여도 괜찮을 것이다. 신입사원, 신입생의 ‘미래보기’ 능력(capability)을 기르기 위한 치밀한 디자인이 오히려 절실한 때다.

김학수 DGIST 커뮤니케이션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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