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망궐례 기사의 사진
고려·조선시대에 멀리 있어 왕을 직접 배알하지 못하는 관리들이 궐패(闕牌·임금을 상징하는 궐자를 새긴 위패 모양의 나무 패)를 모신 관사 등에서 설날, 보름날, 추석 등 명절에 궁궐을 향해 인사하는 예를 망궐례라고 한다. 충성심을 표하는 행위다. 수군들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거나,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낙방하고 돌아가는 길에 궁궐을 향해 하직 인사를 드리는 것도 그리 불렀다. 차원이 다른 망궐례도 있다. 설날이나 동짓날, 중국 황제 생일에 왕과 문무관원들이 중국 궁궐을 향해 드리는 것이다. 치욕스럽지만 군신의 예를 갖추는 것이다. 중국을 향한 망궐례는 1896년 대한제국 창건 후 폐지되었다고 한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피신한 인조가 1637년 설날 명의 천자가 있는 베이징을 향해 올리는 망궐례를 이렇게 묘사한다. ‘임금은 두 팔을 쳐들어 허공에서 원을 그리고 가슴 위로 거두어들이며 무릎을 꿇어 절했다. 세자와 종친과 신료들이 따라서 절했다.… 곤룡포 소맷자락이 펄럭였고 면류관의 청옥과 백옥이 반짝였다.’ 신료들은 피난 중이라 준비가 안 돼 악(樂)을 베풀 수 없고, 악이 없으니 임금과 세자가 춤을 출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다투기도 했다. 그래도 전례를 따라야 한다, 지극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등의 어이없는 난상토론이 있었다. 성밖에는 오랑캐 12만명이 굶겨 죽일 작정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말이다. 실록은 전해 12월 24일 명나라 황제의 생일, 진눈깨비 흩날리는 날에 인조가 남한산성 내행전 앞에서 망궐례를 하며 춤추는 장면도 처량하게 기록한다. 백성과 군졸들 부지기수가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싸우다 죽었다는 상황과 함께. 백성을 먹이고, 나라를 살리는 것보다 망해가는 명나라에 예를 갖추는 게 더 중요했다.

지난주 많은 여야 의원들에게 주한 중국대사관의 ‘카톡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허이팅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부총장(장관급)이 21일부터 사흘간 방한하는데 제19차 당대회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 와달라는 것이다. 아직 예를 받는 나라인가. 그는 시진핑 특사로 방북한 쑹타오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보다 한 단계 낮다. 주한 중국대사는 우리 외교부로 치면 늘 국장급이다. 사드 보복은 조폭이 가게 주인에게 뗑깡 부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친중이니, 친미니 하며 편 갈라 싸운다. 불현듯 망궐례가 생각난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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