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이의 있습니다” 기사의 사진
국정원과 군의 정치 관여,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왜곡된 인사 등 과거 일어났던 황당한 일들이 조사나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지난 일에 ‘만약’을 들이대는 건 부질없다. 그렇더라도 만약 이런 행위에 관련됐거나 알고 있었던 내부자가 조직에 경고음을 울렸다면 어찌 됐을까.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어마어마한 불이익을 당했을 게다. 그러니 내부에 대고 호루라기를 부는 건 개인에겐 인생을 거는 일이다.

미국 국무부에는 ‘용감한’ 제도가 있다.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의 외교·안보 정책이 잘못됐다고 판단될 때 일선 외교관이 장관에게 직접 이의 및 대안을 제기하는 ‘dissent channel’ 제도다. ‘중간을 거치지 않고 최종 의사결정자에게 반대의견을 전달하는 빠른 절차’인 셈이다. 정부 내 찬반이 격렬하게 부딪힌 베트남전 때 만들어졌다. 취지는 민주적이고 이상적이었으나, 시리아 정책 등 소소한 몇몇 사례를 제외한다면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정책을 바꾸겠다고 자기 자리 걸 공직자가 얼마나 있겠나. 내부 규정상 이의 제기한 외교관에게 보복하면 안 되지만, 인사 불이익을 당한 외교관도 있었다. 이게 다시 조명을 받은 건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에 의해서다. 올 1월 트럼프가 논란 많던 반이민 행정명령을 내렸을 때 1000명 넘는 외교관들이 서명했다. 집단 항명이었고, 이를 공개했다.

우리도 비슷한 취지의 제도는 있다. 내부 고발을 촉진시키기 위해 부패방지법 등에 내부고발자 보호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무고나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투서를 걸러낼 장치만 제대로 작동된다면 부패를 막고 잘못된 정책을 걸러내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신고기관에 대한 이행강제성 등이 거의 없어 유명무실하다. 최순실이 농간을 부렸을 때, 비상식적 정책이 추진되고 이상한 지시가 떨어졌을 때, 누군가 호루라기 불려는 시늉만 했던들…. 또 부질없는 ‘만약’을 얘기하고야 말았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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