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의 ‘도시 풍류’ 겸재의 ‘금강산 투어’를 만난다 기사의 사진
각각 한양과 금강산을 즐겨 그렸던 조선후기 대표 화가 신윤복과 정선.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두 화가의 작품이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전시 중이다. 신윤복의 ‘휴기답풍’. 기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선비를 바라보는 하인의 시선이 유머러스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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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표 화가 혜원 신윤복(1758∼미상)과 겸재 정선(1676∼1759).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혜원과 겸재의 주옥같은 화첩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과 ‘해악전신첩’(보물지정 예고)이 대중에게 걸어 나왔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에서 지난 24일 시작된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 공동기획전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정선’전에서다.

각각 풍속화와 진경산수의 대가인 두 사람. 한양을 무대 삼았던 신윤복과 금강산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즐겨 그린 정선을 묶는 전시의 키워드는 조선 선비의 여가문화다. 그림을 매개로 당시 풍속과 유람의 세계로 풍덩 빠져보는 건 어떨까.

김홍도와 더불어 풍속화 분야에서 쌍벽을 이뤘던 신윤복은 술 마시고 춤추고 연애하고 나들이 갔던 도시 유흥문화를 동영상보다 더 실감나게 묘사했다. 혜원전신첩에 묶인 30점은 당시 한양에 살았던 도시 멋쟁이들의 유흥문화 보고서인 셈이다.

이 원본 30점이 전시 기간 중 세 차례에 걸쳐 공개된다. 다 보려면 전시장을 세 번은 방문해야 하지만 혜원전신첩 전체가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라 가볼만 하다. 원본 전시실엔 카펫이 깔렸다. 간송 전형필 컬렉션이 대중과 가까이 만나기 위해 4년전 DDP에서 전시를 시작한 이래 이런 고급스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단오풍정’ ‘월하정인’ ‘쌍검대무’ 등 익숙한 그림뿐만 아니라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그림들이 모두 나왔다. 젊은 선비가 기생을 가마에 태우고 단풍놀이 가는 풍경(‘휴기답풍’)을 보라. 길을 걸으면서도 기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 그를 단풍가지를 꺾어 머리에 장식한 하인이 놀리듯 쳐다본다. 또 다른 그림 ‘쌍륙놀이’를 보자. 기생과 함께 두는 쌍륙놀이가 얼마나 재밌는지 선비는 탕건조차 팽개치고 있다. 풋내기 유생조차 구경에 빠져 공부하러 돌아갈 생각을 잊었다.

신윤복의 그림이 도시 젊은이들의 여가문화를 묘사했다면 정선의 해악전신첩은 한양에서 출발해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전체 21점 중 12점이 나왔다. 경복궁 담벼락이 보이는 한양을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해 경유지인 포천 삼부연의 풍광을 맛보기처럼 담았다. 드디어 한양을 떠난 지 닷새 만에 도착한 금강산 초입. 멀리 일만이천봉이 바라보이는 단발령 고개에 선 선비 여행객들의 감개가 무량하다(‘단발령망금강산도’). 금강산의 위용은 ‘금강내산’을 통해 볼 수 있다. B5용지 크기에 일만이천봉 금강산을 부감하듯 장악해 그려낸 솜씨가 놀랍다. ‘만폭동도’에선 너럭바위에 서서 물소리와 함께 즐기는 금강산의 속살을 시원스레 펼쳐놓는다.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은 26일 “금강산 그림만 이렇게 오롯이 모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해악전신첩(72세 제작)뿐 아니라 ‘관동명승첩’(63세), 병풍(76세) 등 작가가 나이에 따라 다르게 그린 금강산의 특정 장소 그림을 한꺼번에 모아 화풍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총석정도’에서 보듯 초기 사실적으로 그렸던 풍경은 점점 일획으로 내리 그은 심상의 풍경으로 변모한다. 조선 표현주의 화가처럼 일필휘지 그린 산세에서 겸재의 신필(神筆) 기운이 전해져온다.

이번 전시에선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신윤복 그림 속 인물들의 패션을 재현한 ‘오뜨쿠튀르 한양’을 보여준다.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는 정선의 금강내산과 단발령망금강산도를 모티브로 한 미디어아트를 선사한다. 내년 5월 24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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