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강주화] 서울시향의 미래 기사의 사진
“항상 모든 지휘자들은 마이크 앞에만 서면 말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껄껄.”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 사이먼 래틀(62)은 최근 내한공연 전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여유를 뽐냈다.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다. 래틀은 은빛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정열적으로 지휘했다. 단원들은 그의 지휘봉을 따라 물결치듯 극적인 선율을 들려줬다.

독일 베를린에 가면 베를린 필의 연주를 들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베를린 필은 음악 전문가들이 꼽는 세계 3대 오케스트라에 빠지지 않는 교향악단이다. 하지만 이 교향악단에도 수난의 시기가 있었다. 나치 시대에는 권력을 위한 연주에 동원됐고 지휘자는 점령군이 쏜 총에 숨졌다. 독일 통일 후에는 시 당국의 긴축 재정으로 임금이 삭감되면서 일류 단원들을 줄줄이 떠나보내야 했다. 급기야 당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1998년 “베를린시 당국이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갉아먹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재계약 포기를 선언했다.

아바도 이후 2002년부터 베를린 필을 이끌어 온 이가 바로 래틀이다. 그는 음악회를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디지털 콘서트홀’을 도입하고 시민들의 교육 프로그램과 소외계층을 위한 음악 공연을 활성화시켰다. 단원들이 학교로 찾아가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가르치는 ‘베를린 필의 미래’를 진행했고 난민들을 환영하는 연주회를 최초로 열었다. 이런 시도는 교향악단이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전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베를린 필하모니 홀을 가장 먼저 복원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시민들은 베를린 필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현재 상황은 래틀 직전의 베를린 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현정 전 대표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사무국 직원들이 무더기로 떠났고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 전 예술감독까지 사임하면서 단원들의 사기가 매우 떨어져 있다. 다음 달이면 예술감독 공석 기간은 꼬박 2년. 대표 자리도 수개월째 비어 있다.

그러나 흔히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들 한다. 베를린 필이 래틀을 영입해 극적으로 변모했듯 서울시향도 열정적인 새 리더를 맞아 쇄신한다면 아시아 최정상 교향악단이라는 명성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향도 베를린 필처럼 서울 시민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을까. 서울시향의 미래가 궁금하다.

강주화 차장,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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