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죽음, 듣고 말하고 보자’ 캠페인을 기사의 사진
2년 세월은 짧다. 기자는 지난해 1월 15일자 본보 ‘세상만사’ 코너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웰다잉법)의 성패가 2018년 2월 법 시행까지 유예기간 2년의 준비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하위 법령을 빨리 정비해 연명의료 결정(중단·유보) 대상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연명의료 관리 컨트롤타워인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을 시급히 지정하라고 했다. 의료기관은 연명의료 결정 전담조직 및 인력, 호스피스 등 임종 돌봄 인프라를 확충하고 의료진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국민에게 웰다잉법의 취지와 바람직한 임종 문화를 알릴 루트를 자주 마련하라고도 주문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생명경시나 인간 존엄성 훼손 등 부작용을 낳아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웰다잉법이 자칫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정부의 준비는 굼떴고 시간은 금방 갔다. 지난 8월에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선정됐고 지난달 중순 달랑 3개월짜리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10개 시범사업 기관에서 한 달 여간 이뤄진 웰다잉은 10건이 채 안 되는 걸로 알려졌다. 말기나 임종기 환자가 심폐소생술, 항암제 투여 등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의사에게 밝히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도 비슷한 수준에 그쳐 한마디로 실적이 저조하다. 하루 500∼1000명이 연명의료 관련 처치를 받고 숨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웰다잉 선택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건강할 때는 존엄한 죽음을 말하지만 막상 죽음을 앞둔 상황에 처하면 환자나 가족의 선택이 달라지기도 한다. 의사들은 여전히 말기 혹은 죽음에 임박했음을 환자에게 알리기 꺼린다. 연명의료 결정 절차가 복잡해 시행과정에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법 시행을 두 달 앞두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정부가 2년간 연명의료 결정의 두 주체인 환자(크게는 국민), 의료기관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사석에서 만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웰다잉이 모든 의료기관에서 가능하게 되는 내년 2월이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대다수의 시범사업 비참여 기관의 준비는 거의 무방비 상태다. 의료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이 불가피하고 환자-의사 간 소송도 잇따를 수 있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웰다잉의 조기 정착을 위해 정부는 의료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대비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병원 내 연명의료결정 전담 조직을 만들고 의사들에게는 환자·가족에게 죽음을 알리는 방법이나 대처법, 연명의료결정의 절차 등을 교육해야 한다. 아울러 선종(善終·좋은 죽음) 문화 조성을 위한 국민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

아시아에서 웰다잉의 교과서로 통하는 나라가 대만이다. 지난해 취재차 대만을 찾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곳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대만인들은 말기 암이나 치매 등 질병으로 임종에 가까워지면 스스럼없이 무의미한 생명연장 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2000년 만들어진 자연사법에 따라 대만인은 19세를 넘으면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건강보험 IC카드에 표시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부터 10년간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지속한 덕분에 선종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됐다고 한다. 특히 국민배우와 현직 방송앵커 등 유명 인사들이 참여한 ‘죽음, 듣고 말하고 보자(Facing death, Must listen, Must talk, Must see)’ 캠페인은 죽음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대만이 아시아 ‘죽음의 질 1위’ 국가로 평가받는 데는 이런 민관의 오랜 노력이 자양분이 됐다.

이제 한국판 ‘죽음, 듣고 말하고 보자’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연 광고처럼 TV 라디오 SNS 등을 활용한 대국민 홍보, 정부 기관이나 관련 학회 차원의 전국 순회 교육도 괜찮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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