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영석] 또 하나의 한글 기사의 사진
세 살 때 송곳을 가지고 놀다 왼쪽 눈이 찔려 시력을 잃었다. 다섯 살 때 오른쪽 눈마저 감염으로 실명했다. 아버지가 가죽 세공인으로 유복했기에 파리 국립맹아학교를 다녔다. 열한 살 무렵 육군 장교가 학교를 찾아왔다.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어둠 속에서 읽을 수 있도록 작은 요철로 암호가 새겨진 작전명령문이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스무 살이던 1829년 6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새 글자를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점자(點字)다. 그의 이름은 루이 브라유다. 자신의 눈을 앗아갔던 송곳으로 다른 이들의 세상을 밝혔다.

한글 점자는 1898년 미국인 선교사 로제타 홀이 뉴욕 점자를 활용해 평양 점자를 만든 게 시초다. 불편한 점이 많아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제생원 맹아부 교사였던 박두성 선생은 일어 점자 교육에 불만이 컸다. 1920년 한글 점자 연구에 착수했다. 조선어말살정책에 위배되기 때문에 비밀리에 연구회를 만들었다.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訓盲正音)이 세상에 나왔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이던 그날 또 하나의 한글이 만들어졌다.

박 선생 고향인 인천에 29일 점자도서관이 생긴다. 그의 호를 붙인 송암점자도서관이다. 대도시 인천에 이제야 점자도서관이 생긴다니 다소 의외다. 전국의 점자도서관은 40여곳. 이마저도 서울 등 몇몇 도시에 집중돼 있다. 점자법이 지난 5월 시행됐지만 실생활 속 점자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의무 규정이 아닌 탓에 의약품 대부분 점자 표기가 없다. 음료수 캔에는 종류에 관계없이 음료라고만 표기돼 있어 콜라나 주스도 구분할 수 없다. 점자전용단말기는 고가라 그림의 떡이다. 활용도가 낮다 보니 배우려는 이도 줄어 점자 해독이 가능한 시각장애인은 10% 미만이다. 후천적 장애인의 경우 더욱 떨어진다. 누군가에겐 몇 개의 점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세상과 연결해 주는 창이다. 점자 활성화를 위한 관심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글=김영석 논설위원, 삽화=이은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