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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정인교] 미국의 세이프가드 WTO에 제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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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발표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산 세탁기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세이프가드 권고안에 따르면 120만대 이상 수출 물량에 대해서는 월풀의 요청대로 50% 관세를 매기고, 120만대 이하로 설정된 쿼터(TRQ) 물량에 대해서는 각각 2명의 조사위원이 무관세와 20% 관세 부과 의견을 냈다고 한다. 또한 5만대 이상에 대한 부품에 대해서도 50%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만약 ITC 권고안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메이커 기업은 물론이고 부품을 납품하는 많은 중소기업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120만대 쿼터 내 물량을 국산으로 대체하면 업계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지만, 국산 세탁기에 대해서는 미국 반덤핑 조치가 수출을 막고 있다.

내년 2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기대를 걸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통상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압박하기 위한 패키지 차원에서 오히려 더 강한 제재를 최종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는 전형적인 자국 기업 봐주기 조치다. 품질이나 생산성에도 뒤진 월풀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도록 쿼터와 고관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삼성 및 LG가 각각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주에 수천억원을 투입하는 공장을 통해 미국 내수 공략을 하지 못하도록 수입 부품에 대해 20%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메이커의 미국 내 투자에 대해 감사 표시를 하곤 했지만, 미 무역위원회는 미국 내 투자 기업에 대한 영업도 방해하려는 월풀에게 손을 들어 주고 있다.

세이프가드의 본래 목적은 수입품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도록 한시적으로 보호해주는 제도이다. 단순히 취약기업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연구·개발 등 혹독한 노력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미 무역위원회의 결정은 경쟁기업의 시장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오히려 무역왜곡을 조장하고, 자국 기업에 일정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해 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모든 무역장벽의 관세화 원칙과 달리 쿼터를 인정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세이프가드협정을 근거로 쿼터를 설정하면서도 무리한 무역제재를 가하고 있다. 단기간 내 수입 급증으로 ‘심각한 산업피해’가 발생했다는 입증도 없이 자국 기업 편을 들어주고 있어 세탁기 세이프가드는 WTO 관련 규범 위반 가능성이 높다.

3년 동안 무역제재를 하고 있지만, 보상 문제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 50%의 고관세를 부과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존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쿼터 물량을 배정하지도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부품에 대한 고관세 장벽 설치는 국제통상 규범은 물론이거니와 투자 활동을 심각하게 방해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의 무역제재안을 승인하게 되면 국제규범을 검토하고 WTO 제소를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세탁기 이후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등 다른 부문에 대한 보호무역주의로 확산될 것이다.

지난해 ‘이용가능한 불리한 정보(AFA)’로 우리 기업을 제재했을 때 우리 정부는 미국을 WTO에 제소했어야 했다. 더 이상 실기하면 미국의 일방주의는 관행으로 굳어질 수 있다. 다른 국가가 미국에 방울을 달아줄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우리 기업에 대한 피해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 세탁기를 수출하는 메이커는 삼성과 LG뿐이므로 다른 국가가 나서 주길 기다릴 수 없다. 세탁기 생산국인 베트남, 태국 등과 공조하여 WTO 제소를 포함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 대외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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